[처음과 나중]
노록수 선교사
욥 8:7
욥기를 통해 여러 가지 말씀과 교훈들을 나눌 수 있지만 네 가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욥의 친구들의 옳은 말이 오히려 욥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욥기서의 상당 부분을 이루고 있는 욥 친구들의 말은 한결같이 옳습니다. 친구들은 욥에게, ‘네가 정직하고 청결하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 처음은 미약해도 나중은 창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옳은 말이 상대방을 더욱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하면서 내가 옳고 바르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나무와 같은 지혜와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옳은 사람이 사람의 영혼을 효과적으로 죽일 때가 있습니다. 약한 자, 허물과 죄 많은 죄인의 친구가 되셨던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주님이십니다. 사람의 허물을 사랑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자신을 아파하면서 주님께 사랑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둘째, 고난 앞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뭐든지 응답되고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신학자 스탠리 하우워스는 정신분열증 아내로 인해 겪은 고통을 고백했습니다. 아내가 칼을 들고 자신과 아들을 위협하는 환경에서 그 어떤 사치스러운 기도도 할 수 없었고 오직 ‘하나님, 우리를 살려 주세요’라는 외침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그가 30여 년 만에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신앙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외롭게 하실까’였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는 에이즈에 걸린 핏덩이 아이들이 있습니다. 12명의 아이가 내 자식이 되어 자라나고 있습니다. 제가 외롭게 자랐기 때문에 이 외로운 아이들을 보면 그저 내 새끼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고난을 주시고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것 때문에 나를 낮추시고 나를 깨뜨리시고 또 그 아픔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시려고 나를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이 신비를 알 때 고난이 축복이 되고 상처가 별이 될 줄 믿습니다.
셋째, 욥의 오해와 착각이 있었습니다.
욥기의 전반부를 보면 하나님이 욥을 굉장히 칭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사단의 표적이 되어 시험과 고난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백할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오해를 했을까요? ① 하나님이 내 인생을 너무 억울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뜻이 있으셔서 고통 속에서 침묵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고통을 쓰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깊은 고난과 아픔을 통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실 것을 그림자처럼 보여주고 계십니다. ② 영적인 교만을 깨트리시려고 의도적으로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교만해집니다. 가장 무서운 교만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셨을 때 믿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영적인 교만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일에 시간이 지체되게 만듭니다. ③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매일 삶 가운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고백하지 않으면 지식적으로 아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배짱으로,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넷째, 기독교에 있어서 처음과 나중에 대한 구속사가 있습니다.
욥의 친구 빌닷이 말한 본문 말씀과 같이 기독교는 구조 자체가 처음에는 약하고 나중에 창대하게 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근본이신 예수님이 처음에 세상에 오셨을 때 굉장히 미약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묘사하기를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것이 전혀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예수님이 처음 마귀에게 시험받을 때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볼품없었기 때문에 순간 마귀도 실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기 위해 돌을 떡으로 만들라 했을 때 주님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진짜 예수 믿는 분들이 와서 앉아 있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지 영광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못 구원한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원하는 메시아냐고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다 떠나버리고 증오와 멸시와 비웃음 속에서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무력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끝났다고 해서 기독교가 끝난 게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왕 중의 왕으로 우리를 영원히 다스릴 때 우리는 심히 창대하리라는 이 말씀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