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교회는 수능이 끝나면 ‘붙으면 회개, 떨어지면 감사’의 주제로 수능 기도회를 합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고난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는데 인생이 해석되면 그보다 창대한 일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시험을 못 보고 빚이 많고 부부간에 불화로 망하는것 같을때 심히 창대해지는 비결이 무엇인지 듣기 원합니다. 첫째, 나의 고난에 정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욥이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자식도 다 죽고 소유물도 없어지니 내가 죽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빌닷이 ‘네 자녀들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냐’면서 정죄를 했습니다. 욥에게 와서 정죄하는 엘리바스와 빌닷은 자기들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고난에 대해서 욥의 친구들이 하는 변증은 아홉 개가 맞지만 한 개가 틀린데 도덕을 넘어서지 못하는 시각으로 인과응보를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잘난 척을 합니다. 무엇이 미약한 것이고 무엇이 심히 창대한 것일까요? 평안함의 해석, 형통함의 해석이 잘 되어야 심히 창대함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창대함을 나타내려면 반드시 미약한 시작이 있어야만 합니다. 둘째, 심히 창대케 되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부지런히 구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미약하면 하나님을 부지런히, 간절히 찾게 됩니다. 돈을 찾고 능력을 찾으면서도 교회 와서 찬양하고 기도를 하니 꼭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끊임없이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찾는 것같지만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 없는 빌닷도 그것은 저속한 자의 희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저속한 희망이 인생의 목적인 것을 감추고 있다가 시험을 못 보면, 사업이 안되면, 돈이 없어지면, 시련을 당하면 다 죽고 싶은 것입니다. 무엇을 찾았는지 속일 수 없는 때가 오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고 오늘의 적용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예배에 참석하려면 얼마나 부지런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습관성 있게, 일관성 있게 부지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셋째, 심히 창대해지려면 청결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성경의 주제가 거룩이기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청결하고 정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더럽고 거짓말하는 자임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돌아보십니다. 인생이 어찌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깨닫지 못하면 의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청결하고 정직하면’은 해야 할 일이고, ‘돌보시고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보다 더 창대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느낍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의로운 처소가 되어서 평안을 느끼고 형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못 보면 슬프고 잘 보면 교만해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잘 보든 못 보든 그 때마다 하나님을 찾았던 말씀이 있어야 하고 그 말씀으로 증거하는 인생처럼 창대한 인생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싶은 것은 다 세상의 것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딸이 다녔던 초등학교는 전원 예원 입학이 자랑인데 30명이 시험을 봐서 예원선생인 목사님 딸만 떨어져 학교의 기록이 깨졌다고 합니다. 일반학교를 다니며 혼자 독학으로 피아노를 치며 서울예고에 들어갔지만, 수능 후 실기 3주 전에 인대가 늘어나 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재수하면서 재수학원에서 큐티 전도사 역할을 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비교내신제의 혜택을 보나 했더니 하루가 안가 재수생은 제외라는 소식을 접합니다. 원치않는 대학에 수시를 넣었는데 결정적인 실수로 절망했는데 이 모든사건 가운데 큐티 말씀이 있었고 딸은 눈물의 회개와 사명 깨닫는 기도를 했습니다.대학에 붙은보다 더 기뻤다고 하십니다. 결국, 실기시험 중 실수가 많았지만 심사위원을 감동시켜 수석까지 하게 되고 교만하게 다닐뻔한 학교를 겸손하게 다닐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사건에서 그날그날 말씀이 있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상처가 별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부지런히 찾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데 청결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보는 것이 심히 창대한 길이고 이제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하실 그 주님을 우리가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