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언약]
삼하 7:1~9
사람들은 부유해지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다 잊어버립니다. 부할 때 초심을 잃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초심을 잃지 않은 다윗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법궤를 가져오면서 법궤를 넘어서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처받고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변화시킬까만 생각하는 율법주의, 교권주의의 상징인 미갈을 해석하고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언약을 주십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을 감동시켜서 다윗언약을 받았는지 말씀을 통해 보겠습니다.
첫째, 다윗은 평안할 때에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찔러주신 분이 여호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기고 나면 사람들은 모든 것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열다섯 광야를 지나고 웃사를 치신 사건을 겪으면서 여호와의 궤를 가져온 뒤에도 너무 기뻐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자신은 백향목궁에 사는데 여호와의 궤는 너무나 부실한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이 마음 아파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을 지어드려도 되겠느냐고 나단에게 묻습니다. 다윗은 환난 중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더니 화려한 곳에 거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다윗언약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인가 잃은 것 같을 때, 평안할 때에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겉으로는 더 열심히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려울 때에 드렸던 진정한 회개와 간구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초심을 잃었습니까? 잃지 않으셨습니까?
둘째, 믿음의 조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무나도 중요한 언약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갖기 위해서 다윗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나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단은 아주 나이어린 선지자였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늘 신앙으로 바르게 인도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든지 물어보려고 하는 참여의 욕구와 언제나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기를 좋아하는 개별화욕구가 있습니다. 알맞게 물어보고 알맞게 자기가 결정해야 합니다.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잘 듣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조언을 받을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합니까? 함께 참여해야 할 때와 혼자 주님 앞에 서야 할 때를 분별하고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은 마음만 받으셨습니다.
성전을 지어드린다고 하니 누가 봐도 좋은 기도제목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언제 나를 위해 집을 지어달라고 했냐?’고 하십니다. 성전건축은 하나님의 발상이 아닙니다. 가령 사람과 친한 개미가 있는데 그 개미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여왕개미가 사는 집을 지어주겠다고 한다면, 사람이 아무리 그 개미를 사랑한다 해도 그 집에서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성전을 지으면서 하나님이 거하시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빙자한 사업과 선교와 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고도 친밀한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개미집에서 사실 수는 없지만 다윗의 진심에 손주의 선물을 받은 할아버지처럼 기뻐하셨습니다. 너무 기쁘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다윗 뿐 아니라 인류 최대의 선물인 그리스도를 주시는 다윗 언약을 주셨습니다.
넷째, 다윗언약
다윗은 이새의 막내아들로 양치기에 불과했는데 이 다윗을 불러내서 주권자로 삼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취하여내심을 받았습니까? 여러분들의 양치기 시절은 언제였습니까? 거기서 취하여내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간증이 있습니까? 다윗의 원수는 모두 하나님께서 멸하여 주셨고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라 할 정도로 다윗의 이름은 이토록 위대해졌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 이렇게 하나님은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