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로다]
삼상 22:1-22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내 탓이로다’ 한번만 하면 되는데 그것이 참 안됩니다. 인생이 억울하고 용서가 안 되어 그렇습니다. 다윗은 오늘 사울탓이라고 하지 않고 자기 탓이라고 합니다. 네 탓, 내 탓은 공동체의 영향이 크므로 좋은 공동체와 나쁜 공동체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좋은 공동체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둘람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입니다.
‘아둘람’은 피난처란 뜻으로 다윗의 아버지와 형들도 그곳으로 모여듭니다. 자기 나라도, 이방 땅도, 사랑하는 요나단도, 인간적인 사랑의 미갈도 다윗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 방법으로 대제사장 아히멜렉에게도 가보고, 가드왕 아기스에게도 가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힘이 만만이니 그 힘을 빼기 원하셨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칠 때 열등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사울의 미움과 괴롭힘이 상처가 되어 두렵습니다. 모든 환난당한 자, 빚진 자, 원통한 자들이 아둘람 굴로 모여듭니다. 아무것도 없는 다윗에게 오직 그들과 같은 환난이 있었고, 다윗의 고난을 보고 듣기만 해도 공감되었고 다윗 또한 그들을 체휼합니다. 주님은 아무 죄도 없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고난과 죽으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셨습니다. 다윗은 그들과 자기 고난을 해석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다 드디어 고난에 비할 수 없는 더 좋은 말씀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거칠고 상처받은 오합지졸들이 모였지만 인생이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이래도 저래도 다 말씀으로 변화되어 달라집니다. 환난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자기 죄를 보고 서로 ‘내 탓이오’라고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기가 오면 말씀이 있는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지만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이 없는 악인은 한번에 무너집니다. 환난당하고 원통한 자들이 자신의 원통함을 갚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또 다른 환난당한 자, 원통한 자, 빚진 자의 친구가 됩니다. 정말 힘든 사람을 돕고자 했을 때 부흥은 그저 따라옵니다. 우리들교회 핵심가치인 말씀대로 믿고 누리고 살기 위해 환난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자와 함께 가야합니다.
좋은 공동체인 아둘람 공동체에 있는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합니다.
다윗이 구속사가 깨달아지고 분별이 되니 부모형제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외증조모 룻의 고향인 모압 왕에게 부모와 형제를 맡깁니다.
좋은 공동체는 주의 종에게 순종합니다.
다윗은 죽음의 길이지만 선지자 갓이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에 절대 순종합니다. 그러나 예배중독자 사울은 사무엘이 아무리 얘기해도 불순종합니다.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좋은 공동체에 있어야 ‘내 탓이로다’가 됩니다. 모진 남편의 욕설과 매, 시어머니의 매, 상사의 무시가 기다리고 있어도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내가 돌아가야 할 유다 땅 헤렛수풀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나쁜 공동체의 특징을 보면,
나쁜 공동체의 가정과 교회 속에는 권위적인 지도자가 있습니다.
다윗은 환난당한 자의 피난처가 되었는데 도리어 예배 중독자 사울은 기브아 높은 곳, 영생하는 에셀나무 밑에 앉아 협박하는 단창을 들고 그들을 죽이려합니다.
나쁜 공동체의 지도자는 지역감정을 부추깁니다.
사울은 베냐민 출신이라는 피해의식이 있어, 점점 베냐민만 끼고 돌며 편가르기를 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거기에 휩쓸립니다.
나쁜 공동체의 지도자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있습니다.
사울공동체는 극심한 피해의식으로 고발, 선동, 매복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요즘 교회마다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입만 열면 ‘다 나를 왕따시킨다’ 고 합니다.
나쁜 공동체에는 간신배가 득세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네 탓이다’라고 했을 때 ‘왜 내 탓이냐’며 화를 내면 바른말을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도엑 같은 간신배 밖에는 남지 않게 됩니다.
순교자가 나오게 됩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거짓말했지만 아히멜렉은 다윗을 정확히 보고 도리어 변호합니다.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도엑이 자기의 유익을 위해 85명을 죽입니다. 북한도 똑같은 상황입니다. 이것은 우리 생각에는 공정치 못한 것으로 보이나 진리를 위한 죽음은 그 자체가 복이고, 악인에게는 삶 자체가 형벌입니다.
셋째,‘내 탓이오’는 좋은 공동체, 아둘람 공동체의 결론입니다.
비극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사울 탓, 도엑 탓을 하지 않고 ‘내 탓이로다’하고 다윗의 ‘내 탓이로다’는 아둘람 공동체의 말씀의 힘, 회개의 힘입니다. 회개가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지는 비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들이 구하지 말아야할 왕을 구했기에 겪어야할 처절함이 있습니다. 안 겪어보면 계속 세상 왕을 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탓이오’하는 것이 최고의 깨달음입니다. 또한 다윗이 아비아달을 거둔 것처럼, 책임이 수반되는 깨달음이고 천국을 사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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