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언약궤]
삼상 4:1-11
단기간에 고도 성장한 우리나라는 현세에서 잘 살아야 한다는 유교사상이 바탕입니다. 기독교가 40%이지만 자살률이 1위이고 행복지수는 최하위 입니다. 광야시대에 성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언약궤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구체적인 상징입니다. 큰 싸움을 할 때는 언약궤가 군사들과 함께 했지만 사단과 같은 블레셋에게 왜 빼앗겼을까요?
첫째,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고 악을 금하지 않은 시대에 전쟁이 시작되고 사무엘의 말은 전파되지만 말씀을 지키기 까지 20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전쟁에 패하기 전까지는 한계상황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하지만 기복적인 엘리의 말씀만 들리기에 요새 같은 돌만 믿고 전쟁에 나갑니다. 하나님만 믿고 나갔는데 패하고 4천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승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나갔는데 왜 졌을까요?
둘째, 언약궤를 수호신으로 생각하고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부적처럼 들고 나가 하나님께서 우리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회개하고 열심을 낸 것 같은데 잘 안 들어주십니다. 내 뜻대로 기도해서 나에게로 오는 것이 응답이 아닙니다. 언약궤를 들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더 열심히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언약궤 옆에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 사무엘이 있어야 하는데 엘리의 아들들을 데려옵니다. 속제와 화해와 구원과 계시의 역사가 펼쳐지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언약궤를 에벤에셀의 장로들은 부적, 수호신으로 생각합니다. 고정관념은 이렇게 무섭고 하나님을 미신처럼 믿는 사람은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셋째, 종교적인 광신이 하늘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가지고 오면서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이겼다~”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해도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다, 망하지 않는다 합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인 엘리와 그 가족이 하나님을 멸시하니 백성들도 사무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기독교의 문제는 전적으로 지도자에게 있습니다. 돈과 여자에게 손을 데는 엘리의 아들들이 지금이라고 없을까요?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넘어가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당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넷째, 더 큰 패배를 당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열심을 내지만 메너리즘에 빠진 이스라엘은 언약궤만 붙들면 무조건 이길 줄로 믿습니다. 언약궤와 함성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두려움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블레셋처럼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믿는 사람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유교가 무서운 것은 절대 신이 없이 현세만 믿기 때문입니다. 신분계급이 무너지고 유교문화가 합쳐지면서 경제 상위권 나라가 되었지만 “비교불행”이 절대 다수이기에 자살율이 1위입니다. 4천명이 죽어도 회개를 못하니 3만명이 죽었습니다. 영적, 도덕적, 윤리적 상태가 건강하지 못한 승리보다는 패배를 통해 징계를 당하는 것이 유익입니다.
다섯째, 빼앗긴 언약궤를 찾아오려면 하나님을 알고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사하고 만족시켜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지만 그런 제사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제사만 드리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합니다. 자기의 부정부패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지게 하시는가요? 책임지세요!” 하면서 전쟁터에서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상한 진단과 처방을 해서 더 큰 패배를 불러오게 됩니다. 오랫동안 나눔을 하고 싸우지만, 그래도 참석하는 목장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수호신으로 생각하는 종교적인 광신이 하늘을 찌르기에 패배를 당하고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언약궤를 다시 찾아오려면 하나님을 알고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