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본이 되고 있는가?]
행전 16:31~34
손인식 목사님
남녀노소 불구하고 이 세상 사람들은 본이 되는 것에 목말라 하고 본을 보고 싶어합니다. 크리스천에게도 본을 보이는 것은 생명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 산 위의 동네같이 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좋든 싫든 거듭나서 크리스천으로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이미 주변에 본이 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 사람 같은 분의 옆자리에 앉아 5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목적지에서 내리려 할 때 제게 아는 척을 하며 목사인 제가 무엇을 하는지 옆에서 지켜보았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란 일이 있습니다. 이럴 때 목사들은 무엇을 하는지 본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첫째,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과 실라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빌립보 감옥에 던져집니다. 바울과 실라는 기도와 찬미로 죄수들 앞에서 ‘믿음’의 본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사단으로부터 억눌린 감옥 같은 세상 속에서 주변 불신자들에게 가장 빼놓으면 안 되는 본은 믿음입니다. 그때 지진이 내리치고 옥문이 열리며 손의 착고가 풀리는 사건이 그들에게 일어납니다. 바울과 실라의 믿음의 본을 보고 느끼고 들은 죄수들은 삶의 방식 가운데 믿음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감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천국이 됩니다. 우리 삶의 매일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 본이 되지 않는다면 윤리, 생활, 문화 수준 등은 오히려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은 주변에서 다 보고 느낄 수 있고, 주변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목말랐던 이 땅의 인생에 시원한 구원과 영생의 생수를 마시게 해주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으므로 우리는 죄의 심판 앞에 넉넉히 설 수 있습니다.
둘째, ‘덕’을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착고가 풀렸으니 감옥을 나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바울과 실라는 그냥 앉아 있습니다. 그들을 붙잡아 매질하고 감옥에 던진 사람의 목숨을 위해 나가지 않는다고 하니 죄수들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모든 죄수들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본이 될 뿐 아니라 이렇게 우리 삶에 ‘덕’을 생산시켜 줍니다. 믿음이 씨가 되고 뿌리가 되어 자라나 우리 삶 속에 덕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에는 성공한 사람들이 있지만, 덕에는 점수가 형편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득’이냐 ‘덕’이냐를 늘 갈등합니다. 우리는 ‘울컥’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꿀꺽’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사단에게 우리 삶의 현장을 내어주지 않고 믿는 사람답게 성령으로 하여금 우리 삶을 지키는 길입니다. 덕을 세우는 일이 생명이며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본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셋째, ‘감동’으로 믿음과 덕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진으로 잠이 깬 간수가 감옥으로 달려가 옥문이 열려있음을 보고 자결하려 하지만, 모든 죄수들이 옥 안에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 감동 때문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구원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 묻게 되고 바울의 주 예수를 믿으라는 도전을 받게 됩니다. 말씀대로 온 가족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아 천국 잔치를 같이 누리게 되었습니다. 악하고 강퍅한 이 세대도 감동만은 통하는 줄 믿습니다. 이 땅의 가장 위대한 감동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 감동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감동 전하러 가는 곳에 복음이 뒤따라가며 영혼이 뒤따라오는 위대한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