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삼상1:19-28
진정한 기도를 통해 기도응답을 받은 한나는 서원한 대로 사무엘을 나실인으로 깨끗하게 하나님께 바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나실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쳤다는 뜻인데, 어떻게 해야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의 삶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여호와께서 생각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준다고 하면 너무 기분이 좋은데,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셨다면 우리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생각해주는 인생은 자존감이 생기게 되어 두려움이 없어지고 오늘의 내 인생이 '죽으면 예수'로 결론이 나야 하니 인생이 참 쉬워집니다. 주님께 드리기로 결정을 하니 내 것이 없어지고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이 믿어지게 됩니다. 주셔도 안 주셔도 이미 하나님의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예배의 결론은 한나처럼 여호와께 경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인생은 치우치지 않는 삶이며, 오늘을 평범하게 잘 사는 은혜를 주십니다. 이것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경배하고 돌아왔더니 일상에서 부부간의 사랑도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동침하다'와 '생각하다'는 같은 행위인데 부부간의 사랑도 영성이 깊어질 때 기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영과 육이 하나가 되어 물 흐르듯 일원론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둘째, 여호와께 드리려면 때가 차야 합니다.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는데, 이제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되니 임신이 되고 때가 차매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내 생각에 급한 일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시간도 모두 하나님의 창조하심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구하여 얻은 자'라는 뜻이고 '하나님이 떠나지 않으신다'는 의미도 있는데, 기도해서 얻은 사무엘에게 한나의 기도는 늘 기억되고 들렸을 것입니다.
셋째, 예배가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한나의 인생은 예배가 시작이고 과정이고 마지막이 되는, 즉 예배 자체가 삶의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브닌나의 질투와 격동시킴이 없었다면 한나의 이런 기도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열 아들보다 더 나은 남편의 사랑이 있어도 예수 신랑을 찾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삶의 방식인 한나는 응답 후에도 감사를 잊지 않는 성실성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뼛속 깊이 죄인이기에 섬김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서 성실하게 약속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한나의 서원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리가 남편 엘가나에게 있었는데, 한나는 질서에 순종하여 남편에게 먼저 물었고 엘가나 또한 한나의 서원을 인정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배가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은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잘 드리며 삶에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개혁은 이렇게 삶의 소소한 것에서부터 일어납니다.
넷째, 낳은 아이를 젖떼기까지 양육을 잘해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도 젖떼기까지는 양육을 잘해야 합니다. 애착 관계가 잘 형성된 아이가 부부관계, 인간관계에서의 기본이 잘 형성될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상급이 될 수도 무거운 과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때에 맞게 먹이고 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공동체에도 젖먹이가 있고, 브닌나가 있음을 당연히 여기고 십자가 짐 같은 고생으로 젖떼기까지 잘 양육하며 가야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께 가장 좋은 예물로 서원제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을 여호와께 드리러 가는데 제물까지 한나는 가져갑니다. 섬기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자원함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진짜 예배입니다. 값없이 주셨기에 값없이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고의 예물을 드릴 수 있는 것이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의 마음입니다. 가장 좋은 예물은 나 자신이고 내 자녀이며, 이 예물을 온전히 여호와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