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
룻 1:14-22
서로에 감탄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필요한데, 고부간의 충성은 예수를 믿어도 쉽지가 않지만 룻과 나오미는 고부간의 아름다운 관계 이상을 보여줍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룻기가 사사기와 사무엘서 사이에 끼인 진주 알 같다고 했는데, 룻의 충성은 죽음에 이르는 충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러한 충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충성할 수 없는 이유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나오미가 세 번이나 돌아가도 된다고 했는데,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 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너무 가난해서 룻이 전적으로 부양해야 했습니다.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으로 이루어진 모압 족속인 룻에게는 엄청난 인종차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혼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습니다. 나오미는 예수 믿고서도 된 일이 없는 불행이 따라다니는 여자로 보였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이 가정을 지킬 명분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오미는 하나님 말씀대로 한 것이 없는 존경할 것이 없는 부모였습니다. 룻은 이렇게 충성할 수 없는 이유가 쌓였는데 충성을 했습니다.
둘째, 충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번 실수해서 모압 땅에 왔지만 어느 틈엔가 나오미의 믿음이 회복되고,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을 룻이 믿게 되었기 때문에 충성할 수 없는 여러 이유가 단번에 불식이 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사랑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몸으로 알게 되었고, 종교와 언어를 바꾸는 죽음에 이르는 충성까지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두라는 일 계명을 모르면 부모도 부모 노릇을 못하고 자식도 자식 노릇을 못 하는 겁니다. 충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내 항해의 끝이 주님이 되어야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입니다. 충성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편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기적 사랑이 아닌 이타적인 남편의 자리, 아내의 자리, 성도의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또한, 룻처럼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충성입니다.
셋째, 충성은 변명하지 않고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가는 겁니다.
모든 것 버리고 죽기를 각오한 충성과 헌신으로 왔지만, 고향 백성이 다 반겨 주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시선과 관심으로 볼 수도 있는데, 회개한 사람은 사람의 말에 잘 견뎌 냅니다. 오히려 자신은 나오미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라 고백을 하고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갑니다. 남들이 뭐라 할 때 변명 없이 달게 받고 내 고난은 내 죄보다 약하다고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충성된 일꾼입니다. 텅 비어 돌아왔다는 나오미의 간증에 룻의 입장에서 나는 무엇인가 생각할 수 있지만, 둘 사이는 서로 눈치 보며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충성된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그저 쓰임 받으면 좋다는 사람이 가장 충성된 일꾼이라 생각됩니다.
넷째, 충성하면 추수할 것이 있게 하십니다.
흉년이 들어서 떠났는데 풍성할 때 돌아오게 하셨는데, 적용만 하면 시작이 반입니다. 더 깊은 회개로 나갔더니 사랑받는 나오미가 쓰고 비참한 마라의 삶을 거쳐서 다시 사랑받는 나오미로 돌아오게 하신 줄 믿습니다. 우리들교회에서 늘 죄 고백이 있을 때 추수할 것이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주님의 일꾼으로 살겠다고 하면 반드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교통사고로 입원 중이었지만 아픔을 참으며 이혼위기의 오빠를 교회로 인도한 집사님처럼 사소한 곳에서부터 즉시 충성을 하되 다른 곳에서보다 내 집에서부터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