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고 베임을 통해 남은 희망의 그루터기]
이사야 6:1-13
김회권 목사
저는 예수를 믿지 않고 불교 믿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예의바르고 총명해 보이는 선배가 예수를 전할 때도 겉으로는 장난삼아 거절했지만 속으로는 그 선배를 존경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치 않았습니다. 학업사육 당하는 고등학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지만 신문에 실린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라는 구절을 읽으며 대학에 가면 꼭 그 시인을 찾아보리라 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왔는데, 어수선한 시국에 당시 학교 기숙사에 남아있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야 했고, 교수님들이 매 맞는 것을 보며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폭력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저에게는 웃시야 왕이 죽는 경험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은 52년간 유다를 통치하며 국방, 외교, 경제 등 모든 면에서 획기적으로 진전시킨 왕이었습니다. 그런 웃시야가 살아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하늘 보좌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보이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 웃시야는 지성의 향연을 즐기며, 큰 인물이 되기를 꿈꾸던 대학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의 꿈, 우상이 살아있을 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생에는 죄와 상관없이 부조리한 사태가 찾아오게 마련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하늘 보좌가 보이게 됩니다. 일본에 기독교의 뿌리가 내리게 한 미우라 아야꼬나 우치무라 칸조도 절대적 무기력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의 서기관으로서 그를 숭배했었는데 그를 잃고 유다의 미래는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열등한 것을 잃고 우등한 세계를 얻은 것입니다. 내 삶에 상실과 죽음의 경험도 하나님이 있다면 그 의미가 반전됩니다. 아마 저의 대학시절이 꿈꾸던 이상대로 평탄했다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삶의 깊은 반성과 고찰 또한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83년부터 94년까지 11년간의 세월을 캠퍼스 선교사로 말씀과 기도로 자발적 가난을 살았지만 3년처럼 짧게 느껴졌고 행복했습니다. 그 삶은 상실과 더 큰 얻음, 더 큰 열림의 삶이었습니다.
그 후 7년 동안 프린스턴에서 신학을 공부한 유학기간은 제 삶의 터가 요동치는 시간이었지만 스랍들과 함께 하나님 보좌로 들어올려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삶에 소망의 그루터기가 남기 위해 허무맹랑한 욕심들을 베어내고 자르시는 상실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유다의 미래는 영적 지방질로 가득 찬 비대한 유다의 국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착념하며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하여 영적 죄 사함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죄악 된 세상으로 질주할 때 하나님은 호세아2장 6~7말씀처럼 가시로, 담으로 그 길을 막아버리십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나쁜 경험이나 삶이 요동치는 것 같은 사건을 주시는 이유는 흔들리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직관적으로 노출되어야 내가 부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979년 박덕훈 목사님의 요한일서2장 15~17설교말씀으로 내 마음의 문지방 터가 요동치면서 제가 재구성되는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기준으로 제 고상한 세계관이 부정하고 누더기에 불과하며, 제가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졌고 주님께 완전히 항복하게 됐습니다. 가건물 같은 제 실존을 부수시고 말씀과 성령에 의해 재건축하시고 재활, 복구, 회복시키셨습니다. 믿고 의지했던 모든 세상의 성전 터가 요동칠 때 바로 우리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새로운 계획을 시작하십니다. 기가 막힌 변증법적인 주님의 섭리 앞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넌 안 돼!’하며 최후통첩을 해선 안됩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께는 모두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