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의 분량대로 축복]
창세기 49장 13-28절
부모가 육적으로 잘 살았을 때 자녀가 잘 되는 확률이 7%이고, 부모가 고생했을 때 자녀가 잘 될 확률은 70%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녀를 위해서 돈을 번다고 이를 갈면서 수고합니다. 야곱이 믿음의 분량과 은사대로 열두 아들을 축복하는 것처럼(28), 자신의 상황과 입장을 냉정하게 보고 은사를 알게 하는 것이 자녀를 축복하는 방법입니다.
은사는 경계를 지켜야 합니다. 스불론의 거하는 은사(13)는 평범하지만 요동치 않고 한결같다는 면에서 공동체를 지탱해 줍니다. 잇사갈의 낮아지는 은사(14-15)는 단순하고 우직하게 교회를 섬깁니다. 단의 심판하는 은사(16)는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능력으로 공동체의 결정을 돕습니다. 갓의 추격하는 은사(19)는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공동체를 도와줍니다. 아셀은 공궤하는 은사(20)로, 납달리는 좋은 소식을 전하며 전도하는 은사(21)로 공동체를 기쁘게 합니다. 요셉은 보여주는 은사입니다(22-26). 다른 지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예수님을 믿고 싶게 합니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은사(27)를 가진 저돌적인 사람으로 이런 무리가 있어 교회의 일이 굴러갑니다. 이렇게 각 지파의 경계를 잘 지킬 때 아름다운 공동체가 됩니다.
은사가 경계를 넘어가면 공동체를 해롭게 합니다. ‘후한 선물’이라는 뜻의 스불론이 돈이 좋아서 경계를 넘어가면 공동체가 와해됩니다. 그래서 시돈까지의 경계를 정해줍니다. 잇사갈의 낮아짐의 은사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쉬고 놀기만 좋아하다가 주인에서 종이 되기 쉽습니다. 판단을 잘하는 단은 경계를 넘어서 할당받은 기업 외에 성을 취했다가 패망합니다(삿18장). 갓은 쉬지 않고 추격하다 탈진하기 쉽고, 아셀의 공궤하는 은사가 도를 넘으면 봉사 중독으로 예배보다 봉사가 앞서게 됩니다. 납달리의 아름다운 소리가 경계를 넘으면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고 성가대나 찬양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요셉은 영육간의 모든 복을 다 받고도 관리를 못해 훗날 요셉에 속한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의 방종과 우상숭배로 멸망했습니다. 베냐민 역시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밖에 모르는 성인 아이로 피폐해집니다.
은사의 주인은 오직 주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두 아들의 장래를 바라본 야곱은 단 지파가 경계를 넘어갈 것을 알고 특별히 단을 위한 구원의 기도를 합니다(18). 전능자의 손을 힘입어, 험악한 삶을 살아온 야곱이 의로운 요셉을 축복합니다(24). 보이는 복을 넘치게 받은 요셉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복을 시들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험악한 세월을 통해 만난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기 원한다고 간절하게 축복합니다(25-26). 열두 지파를 축복한 분량이 각각 다르지만, 요한계시록 7장에서는 모든 지파마다 12,000명씩 12지파의 144,000명이 천국에 입성합니다. 내 은사를 부끄러워하거나 남의 은사를 부러워할 것 없이, 내게 주신 은사대로 공동체를 섬기는 것이 각인의 분량대로 누리는 축복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4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