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합니다.
목장 공동체에서 삶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워집니다.
교회와 세상을 섬기며 복음의 사명을 이어갑니다.
우리들교회를 처음 찾은 분의 새로운 시작을 돕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비전과 사람들, 채플 소식을 안내합니다.
[ 충성된 자]
이성훈 목사
삼하 20:18~22
오늘날 기업들은 로열티 프로그램을 통해 충성 고객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알게 모르게 무엇인가에 충성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시간과 돈, 관심이 향하는 곳이 바로 충성의 대상입니다. 오늘 본문은 압살롬의 반란이 끝난 뒤 세바의 반역이 일어난 상황에서, 예상 밖의 한 무명의 여인을 통해 하나님께서 참으로 충성된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첫째, 여호와의 기업을 아낍니다.
세바를 추격하던 요압은 아벨 성을 포위하고 성벽을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름도 없고 힘도 없는 무명의 한 여인을 통해 참된 충성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세바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다윗을 거역했고, 요압은 반역자를 잡는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먼저 섰습니다. 여인은 무너지는 성벽 위에 올라가 "성을 공격하기 전에 화평을 제안하라고 하셨는데 왜 묻지도 않고 성부터 무너뜨리느냐?"며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요압에게 질문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라고 소개하며 아벨 성은 어머니 같은 성이며 여호와의 기업이라고 말합니다.
세바에게 성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방패였고, 요압에게는 전쟁의 승리를 위한 과녁이었지만, 여인에게는 사람들을 품고 길러 온 어머니 같은 공동체이며 하나님께 속한 소유였습니다. 같은 성을 바라보면서도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충성의 대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충성은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충실히 지킬 때 공동체에는 화평이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자신의 권리와 정의만 주장하거나 자리를 떠나면 공동체는 무너지게 됩니다.
교회와 가정 역시 내 만족을 위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니느웨까지도 아끼셨고,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더욱 귀히 여기십니다. 참된 충성은 공동체를 내 소유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소유로 여기며 사랑하고 지키는 삶입니다.
둘째, 자신의 충성을 장담하지 않습니다.
요압은 여인의 질문에 "결단코 성을 삼키거나 멸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화평을 말하지만, 손으로는 성벽을 허뭅니다. 앞서 아마사를 "평안하냐"며 인사한 뒤 칼로 죽인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병든 충성은 자신의 의로움을 확신하며 끊임없이 변명합니다. 요압은 세바의 죄는 정확하게 지적했지만,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베드로 또한 "모든 사람이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단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몇 시간 후 바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합니다. 자신의 충성을 믿는 사람은 결국 가장 자신하던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이는 충성의 근거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충성하겠다는 확신이 강했지만, 실제로는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 남편의 자리에서 충성하지 못했고, 제가 얼마나 교만한 사람인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환경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장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기보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제 안에 요압이 있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내 안의 세바를 내어던집니다.
요압은 세바를 넘겨주면 성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제안합니다. 이에 지혜로운 여인은 공동체와 함께 의논하고 설득하여 세바를 내어주고, 결국 아벨 성은 보존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인이 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죄를 감싸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공동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숨기지 않고 도려냅니다.
우리 안에도 억울함, 자기 의, 원망, 자기방어와 같은 세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안의 세바를 공동체 앞에 내어놓고 회개할 때, 그 비워진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십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안의 세바가 나간 그 자리에 진짜 충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와 사십니다. 하나님 앞과 믿음의 공동체 앞에 솔직히 오픈하여 내어놓으면 회개와 치유가 시작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한 목자님께서는 갑작스러운 실직 후 마음이 급하여 연봉과 조건만 보고 새로운 직장에 취업하셨으나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두통과 공황 증상까지 겪게 되었고, 회사를 원망하며 자신의 상황을 합리화하셨습니다. 결국 아내와 충분히 상의하지 않은 채 혼자 퇴사를 결정하셨습니다. 목자님은 아내가 무서워 말하지 못했지만, 목장에서 솔직히 나누었습니다. 공동체의 사랑 어린 권면을 통해 회사보다 자신의 자기합리화와 자기방어가 더 큰 문제였음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직장을 허락하셨지만, 목자님은 무엇보다 회개하게 하신 것이 가장 큰 은혜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설령 취직이 되지 않았더라도 회개하게 하셨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어던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충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세바는 죽었지만 반역의 정신은 계속 이어졌고, 요압도 여전히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잠시 진정시킬 수는 있어도 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참된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요압은 세바의 머리를 요구했고, 여인은 죄인을 내어주었지만, 예수님은 죄 없으신 자신을 내어주시며 십자가에서 참된 충성을 이루셨습니다. 충성은 날마다 내 안의 세바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끝까지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충성은 여호와의 기업인 가정과 교회를 아끼고, 자신의 충성을 장담하지 않으며, 내 안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충성할 수 없기에 십자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며 죽기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시는 삶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