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
김성우 목사
행 5:27~32
지난주 태어나면서 일어설 수 없었던 한 사람을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주목하며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말하고 오른손을 뻗어 잡아 일으켰던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들로, 산으로 떠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들 곁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교회를 떠나고 싶다는 집사님을 가끔 보게 되는데, 저는 이곳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내 죄가 보이고 내 삶이 해석되니 아버지와 어머니를 교회로 모시고 함께 예수 그리스도로 일어서서 살아난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의 증인인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째, 끌려 세운 곳에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성전에 들어간 이후 이 일이 알려지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시기하여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사도들을 꺼내시고 성전에 서서 이 일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이 첫 번째로 한 일은 새벽에 성전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고, 그들은 다시 끌려와 공회원들 앞에 서게 됩니다. 두 달 전 예수님이 끌려가신 그 상황을 똑같이 경험한 자리에서, 베드로는 부인하거나 도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섭니다.
내가 실패해도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같은 상황을 보여주시는 것은 이곳이 내 사명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반복되는 환경을 주시기에 사명의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해서 간 자리가 아니라 원치 않아 간 그곳, 곧 가정이 내가 증인으로 서야 할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듯이, 성령에 이끌려 하나님의 택하심과 계획 안에서 주님의 손에 이끌려 나를 이 가정에 태어나게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때 감옥에 가시고, 나오신 이후 평생 무직ampmiddot알코올중독자ampmiddot노숙자로 사셨습니다. 폭행과 술주정을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제가 고3 때 집을 떠나셨습니다. 정말 저희 아버지는 아무도 감당하지 못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를 신뢰하시기에 제게 맡기신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인 나를 먼저 살려주셨기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자리, 떠나고 싶은 자리, 도망치고 싶던 자리에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공동체를 주셔서 내 손을 붙들어 주십니다. 내 옆에 한 사람을 붙여 주시고,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만큼 힘들 때는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됩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 거지처럼, 뭔가 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 자체가 증인입니다. 고난의 흔적을 가진 우리가 살아내기만 해도 존재 자체가 증인이 됩니다.
둘째, 내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존재 자체가 증인이기에 사람들은 계속 묻습니다. 어떻게 가정을 지키셨어요? 어떻게 부모님을 섬기셨어요? 어떻게 자녀를 섬기셨어요? 어떻게 살아나셨어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증인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이 사람, 복음을 너희 가르침이라 표현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고 무고한 그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에, 온 힘을 다해 부정하고 또 부정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순간 내가 죄인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틀렸다를 인정하지 못하고 금하고 또 금합니다. 그러나 말할 사람이 없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집니다. 말할 수 없으면 가면을 쓰게 되고, 가면을 쓴 사람은 예수의 증인이 아니라 자기 행동, 자기 자신을 증언하며 자랑과 변명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가치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의 증인인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진정한 관계는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연기가 아니라, 오해를 감수하더라도 진짜 경험을 드러내고 고백하고 인정하며 증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셋째, 회개와 죄 사함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입에 담기도 싫어 이 이름이라 한 예수에 대해, 베드로와 요한은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이는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살아나라는 것입니다. 회개와 죄 사함을 주시는 분을 알라.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너도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고, 우리 모두 죄인이다.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과거와의 단절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지 않았듯, 회개는 과거와 완전히 결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결심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증인은 자신의 성취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고 돌이켜 용서받은 사실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이라는 말 자체가 마르투스, 곧 순교자라는 뜻을 갖습니다. 이 시대의 증인은 자기 옳음을 주장하는 혈기를 죽이는 사람입니다. 순종하여 고백할 때 성령께서 우리를 증언하시고 힘주시며 높여 주십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한 장로님은 과거 유부녀와 두 번 바람을 피운 죄를 평생 숨겨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연상의, 결혼에 실패한 여자와 결혼하려는 사건 앞에서 자신이 원치 않았던 환경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예비 며느리를 향해 그녀가 나보다 옳다 고백하며 공개 치리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 죄를 반복하지 않는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갔고, 그 과정이 간증이 되어 많은 사람을 살리는 증인이 되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루 내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성령께서도 우리를 증언해 주십니다. 마지막 날 아버지 앞에 섰을 때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주님, 이 사람은 당신의 아들입니다, 딸입니다 증거해 주시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