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신 하나님]
왕하 19:1~7
하나님께서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시고, 반드시 건지실지라의 약속을 주셔도 우리는 억울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억울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옳다는 확신에서 나오기에 억울함이 커질수록 회개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오늘 히스기야는 굉장히 억울한 상황에 있지만 함몰되지 않고 그 문제를 가지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장 억울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회개하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그의 신하 엘리야김, 셉나, 요아의 찢어진 옷과 함께 전해진 랍사게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목숨 걸고 산당 철폐의 종교개혁을 단행했고 앗수르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는데, 앗수르에 의해 망하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는 영적 전쟁임을 선포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든다면 내 힘으로 전쟁한 것이고, 내가 이런 일 당할 사람이 아니야. 하면 새 왕복을 찾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위기 가운데 관점을 바꿔서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갔습니다.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회개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찾아온 억울한 사건 가운데에서도 주일성수 하며 모든 예배 자리에 나오고 목장에 들어가고 여러 봉사 자리에 참여하며 'Think Trip'에 함께 하는 것이 회개하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내가 이미 죽어서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인생임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바닥이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이 남아있는 자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회개하는 모습이 지도자들에게 옮겨 갔지만, 그들은 굵은 베 옷을 자진해서 입지는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굵은 베 옷을 입혀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냈고, 그들은 이날이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전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쳐들어온 것이 유다의 오래된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임을 인정하며 자기와 유다의 죄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근원을 생각해 보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또한, 그는 임신해도 해산할 힘이 없다고 자신의 전적인 무능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입으로는 똑같이 고백해도 위선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전적 무능을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누구 앞에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늘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영적 진실성은 내 능력과 성품과 교양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전적인 무능 때문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과 간절함으로부터 나옵니다. 자기 죄를 처절하게 본 사람은 전적으로 무능한 자신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중심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겸손하게 자기와 똑같이 베를 두른 지체들과 함께 기도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왕에서 찾지 않고 이 남아있는 자들에게서 찾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증거는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 것인데, 우리는 본성적으로 겸손하지 않기 때문에 억울한 사건을 주셔서 낮은 자리로 내려가게 하시고, 남은 자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게 하십니다. 공동체야말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최고의 통로입니다. 환난 당하고 빚지고 마음이 원통한 지체들과 하나가 되어서 기도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셋째,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복들은 이사야를 극진히 높이는 히스기야와 같은 마음으로 이사야에게 나아갔고, 주님은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사야를 통해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보시고 들으시고 다스리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말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운 말을 하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이 한 영, 즉 소문을 듣고 속게 하는 거짓의 영을 두겠다고 하시며, 앗수르 왕이 소문에 속아 본국으로 돌아가 거기서 칼에 죽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풍문과 풍설이 많은데, 여러분 속에는 이런 악한 영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외침,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는 능력의 말씀이고,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으며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은 초원 부목자 모임에서 옷을 찢는 마음으로 고백한 어느 부목자님의 나눔입니다. 부목자님은 목장 모임이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 언어로 정답만 이야기하는 것이 답답하고, 목자님과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하시며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고 나누었습니다. 이에 초원님은 '부목자님에게 두려움이 있지만 외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해야 할 상황인 것 같아요. 교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나를 돕기 위해 준비된 세팅입니다. 속 시원하게 터트려주어야 해요. 부목자님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위장된 마음이 더 두렵게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목장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을 수 있어요. 오늘 목사님 말씀처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부목자님 마음 안에 목자님과 아내를 정죄하는 모습이 있어요.'라고 해석했고 부목자님은 '맞습니다. 제 모습이 목자님과 똑같아서 그 모습을 보며 직면하기를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힘들어도 이렇게 터트리면 그다음에 편해지는 게 있습니다.
여러분, 이사야의 말을 딱 알아듣는 히스기야를 성군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각자 집안에서, 공동체에서 싫은 말과 쓴 처방을 잘 듣는 성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서로서로 One Of Them 공동체가 되어 처절함과 겸손함으로 같이 모여 함께 기도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