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건지실지라!]
왕하 18:28~37
지난주 모든 때를 하나님의 아름다운 걸작품으로 사셨나요?
우리는 자꾸 아름다운 환경을 생각하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랍사게의 두 번째 연설을 통해 우리는 왜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세상의 외침에 쉽게 속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지금 앗수르 군에게 포위되었고 하나님만 의뢰하는 히스기야는 랍사게의 조롱을 받습니다. 히스기야가 보낸 세 명의 장관은 이런 랍사게의 말을 백성이 듣는 게 두려워서 '제발 유다 말로 하지 말고 아람 말로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심리전에 달인인 랍사게는 더더욱 큰소리로 유다 말로 외칩니다. 랍사게는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고 말했던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고 대왕 앗수르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세상을 다스리는 산헤립 왕이 군대로 성을 포위한 채 유다 백성을 향해 큰 소리로 울려 퍼지는 말은 심장이 녹아내릴 만큼 두려웠습니다. 유다의 그 누구도 앗수르 군대에 맞서지 못하는 형편이니 앗수르 왕의 말이 너무 맞는 말 같습니다. 또한 랍사게는 유다 백성들에게 항복하고 나오면 무화과와 우물물을 보장하고 지상낙원 같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랍사게의 말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앗수르의 이주 정책은 피정복민의 정체성을 말살시키고 반란을 방지하기 위한 아주 잔인한 이주 정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두렵게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게 하는 게 세상의 큰 외침이며 하나님을 의뢰하는 우리 자리에서 떠나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믿어야 진리 위에 서서 속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보다는 앗수르 왕처럼 보암직한 세상의 힘과 지위와 능력이 지금 당장 더 옳은 것처럼 보이는 게 우리의 연약함이고 한계입니다. 오늘 본문에 '건지다'가 일곱 번 이상 나오는데 잘 속고 건짐 받을 자격이 없을수록 하나님의 건지심을 받을 확실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자꾸 높아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고 설득해도 듣지 말고, 항복하라고 합니다. 앗수르는 당시 중동 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초강대국이었습니다. 산헤립은 앗수르 왕 중에서도 많은 승리를 통해 얻은 포로, 인질들, 돈, 땅들로 교만해졌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어떤 신들도 자기 적수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며 하나님까지 대적하며 무시합니다. 이렇게 교만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교만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이 교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어요? 바로 칭찬과 인정받기를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스탠퍼드 대학 심리학과에서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선행을 기록하고 칭찬한 후 다양한 도덕적 선택을 할 기회를 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는 칭찬하기 전보다 도덕적으로 퇴보한 선택을 했습니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겨 부정적인 선택을 해도 괜찮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큐티하면서 하나님께 꾸지람을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칭찬도 욕구이기에 채워질수록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되고 조그만 비난도 참지 못하고 나아가 하나님도 판단하고 무시합니다. 앗수르 왕도 구원받아야 할 죄인일 뿐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께만 우리 인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셋째, 우리는 전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랍사게의 말을 다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침묵했습니다. 이 침묵은 산당을 제거한 종교개혁을 한 히스기야 왕의 양육에 따른 적용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의 최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고 침묵은 세상의 큰 외침과 거대한 교만 앞에 선 성도의 전적인 무력함을 상징합니다.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지만 랍사게의 연설에 일방적으로 패배하고 옷을 찢습니다. 수치와 모욕 속에서 그대로 왕 앞에 나아갑니다. 찢긴 마음, 깨진 자존심, 실패한 열심,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손 때문에 위축된 내 모습을 하나님 앞에 고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전적 무력함 때문에 힘들고 떠나고 싶을 때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나아가 건짐 받을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전적으로 무력하기 때문에 건지십니다. 히스기야가 산당 예배를 철폐했기에 침묵과 회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기복에서 팔복의 말씀을 날마다 듣다 보니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고, 높은 마음 품다가 앗수르처럼 멸망하지 말고, 돌이켜서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사랑의 외침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부부목장에서 치열하게 싸운 목자님 부부의 나눔입니다. 제가 돈벌이가 안 되니 아내가 카드값을 내고 있는데, 카드로 제 담뱃값을 계산했습니다. 아내는 형편도 어려운데 하루 한 갑씩 한 달이면 135,000원이라며 화를 내니, 기분이 나빠 욕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이혼하자!' '차 열쇠, 핸드폰, 카드, 다 내놓고 나가라!' 했습니다. 아들도 7년 만에 공부하겠다고 도와달라고 그러는데 제가 도박중독으로 가정을 파탄 나게 했으면서도 아직도 담배를 못 끊고 있으니 마땅히 수치와 조롱을 받는 것이 인정됩니다. 아내는 제가 목장에서 솔직히 나눌 땐 좋은데 집에만 가면 달라지니까 이제는 목장에서 나누는 것도 싫어지고 목장에서 하는 만큼만 집에서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저는 내가 오죽 못났으면 아직도 이런 말을 듣는구나! 인정이 되었기에 분하고 억울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그야말로 옷을 찢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께 나아가 고하며 이렇게 모든 때를 아름답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의 외침이 두렵고 부러워서 날마다 속으며 세상에서 높아지고 싶은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길 찬송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높아지려는 내 교만을 침묵으로 회개하고 예배드리며 반드시 하나님께 건짐 받는 은혜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