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이상진 부목사
눅 15:25~32
판교 청년 3부 에제르 공동체를 섬기고 있는 이상진 목사입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있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해 아버지의 기쁨에 참여하지 못하는 집에 있는 탕자 집탕 아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에 대해서 묵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거부해도 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맏아들이 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에서 풍악 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에 한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인지 묻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허랑방탕하게 살던 동생이 건강하게 돌아와 기쁜 아버지가 살진 송아지를 잡으면서 잔치를 배설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맏아들은 분노하며 집에 들어가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만 열심히 일했다는 생색과 피해의식으로 자기 생각에 갇혀 지옥을 살고 있는 맏아들에게 집으로 들어가자고 권합니다.
저도 상한 갈대가 되어서 억울한 일 앞에 아버지의 권면을 강하게 거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변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열심히 사역을 해왔습니다. 전처가 회사 일로 힘들어하면 '네가 큐티하지 않아서 힘든 것'이라고 했고, 사소한 일도 지적하며 전도사의 아내답게 체통을 지키라고 요구했습니다. 어느 날 전처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게 되었고 외도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토록 열심히 사역하며 달려온 나에게 염소 새끼는커녕 외도사건이라니! 하며 억울했지만, 체면과 교양 때문에 공동체에 나누지 못하고 이혼으로 관계를 끊었습니다. 그러던 중 복학생으로 학교에 다니던 그때, 신앙 수련회 강사로 오신 김양재 담임목사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고난을 해석하고 살아나신 간증을 들었을 때 저분은 진짜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그 수련회에 강사로 오신 담임목사님이 제게는 집으로 들어오라는 하나님의 권하심이었습니다.
우리는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기고 인정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혼자만의 동굴로 회피하고 이혼과 자살, 분노를 표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예배를 권하고, 목장 참석을 권하고, 큐티를 권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망의 사건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을 누리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원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니 돈을 모두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는 이 잔치가 굉장한 낭비이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주인으로 섬기며 종처럼 일한 공로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고 동생에게는 그런 공로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구원 때문에 물질과 시간을 낭비합니다. 손해를 끼치고 피해를 줘도 죄인이 돌아옴을 기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오래도록 기다리시고 찾아와 권하시며 시간의 손해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감수하시는 낭비의 절정은 바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그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저는 자존심이 상하고 배신감에 아파하며 제가 받은 손해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선택한 것이 고작 이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숨까지도 내어주셨는데 그 은혜를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혼한 것을 속이고 사역자로 지원했고 양육을 받으며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되나? 생각했지만, 그래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에 엘리사가 게하시 때문에 통회하며 이타적인 기도를 했고 그로 인해 게하시가 눈이 열려 불 말과 불 병거를 보게 되었다는 담임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 비로소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피해만 입히는 사람인데 그런 나 때문에 목사님께서 회개하셨고 이타적인 기도를 하셨구나! 깨달아졌습니다. 구원 때문에 이런 손해를 감수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셋째, 아버지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는 것이 사명입니다.
아버지는 뼈 빠지게 일만 해온 맏아들에게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기 때문에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합니다. 살진 송아지도, 집안의 종들도, 아버지가 사랑하고 바라는 모든 것이 맏아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을 똑같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잃어버린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애통함과 그 영혼이 돌아왔을 때의 기쁨도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한 사랑은 거절당해도 계속 찾아가 권하는 것이고 손해가 생기는 것을 개의치 않으며 자기 생명까지 내놓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내 가정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삼는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난 달, 청년국 큐페가 있었습니다. 큐페 중 아침 큐티 본문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마을로 가시는데 그곳 사람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받아들이지 않자, 제자들이 '하늘을 명하여 불을 내려서 저들을 혼내줄까요?' 예수님께 묻지만, 예수님께서 아니라고 꾸짖고 그들을 함께 데리고 다른 마을로 돌아서 가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동체에 피해를 준 죄인인 저 때문에 담임목사님과 공동체가 손해를 감수하며 저를 함께 데리고 가시는 사랑이 깨달아져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 때문에 오늘도 여기서 이렇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저도 영혼 구원을 위해 늘 권하고 살진 송아지 잡는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여러분, 나와 항상 함께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는 거부해도 끊임없이 권하십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구원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 손해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기억하고 우리도 힘든 가족 힘든 지체를 위하여 끊임없이 예배와 큐티를 권하고 손해 보며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는 귀한 은혜를 누리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