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서]
왕하 17:19~28
코로나 시대의 상징이었던 재택근무가 서서히 사라지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감독 없는 자발적 헌신은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를 생각하며 살아야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도망하고 숨으려 할 때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자기 죄를 보는 사람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유다만 남았는데, 구원은 유다는 착하고, 북이스라엘은 나쁘다라는 인과응보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뜻이며 그분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137년 유예기간을 주며 기다렸지만, 유다도 이스라엘의 죄악을 따라 행하였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셨다고, 왜 망했는지 반복해서 설명하십니다. 솔로몬의 타락 때문에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었고,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숭배로 온 나라가 큰 죄에 빠져 망한 것이라고, 근본적인 원인이 다윗의 집에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잘못 없는데 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 거야! 물어내!'라며 비난하고 탓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믿는 우리는 삶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신자와 불신자 중 신자가 무조건 잘못이고, 신자 중에는 믿음이 좀 더 좋은 사람이 무조건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면 항상 회개할 것밖에 없습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고,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거울과 같아서 그 앞에 서면 우리의 실체가 다 드러납니다. 거울의 모습이 내 모습임을 인정하고 거울 앞에서 머무르며 계속 얼굴을 닦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 그 앞에서 머무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이요, 회개하는 사람이며 돌이켜 살아나는 사람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앗수르 사람들이 이주했는데, 사자 무리가 나타나 공격하여 사람을 죽였습니다(25). 성경은 그 이유를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함으로라고 말씀하는데, 앗수르는 그 땅 신의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땅을 빼앗겼느냐, 차지했느냐 이것만 크게 생각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하지 않느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떠난 인생은 두려움과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영원한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달려갈 때 두려움과 고통을 지나면서도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동체에 머무는 것이 요동치 않는 비결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내가 하나님을 떠날까 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두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만나는 두려운 사건은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인입니다. 오늘 두려운 일이 생겼습니까? 하나님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시고 하나님께 달려가 숨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사자 습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마리아 포로 제사장 한 명을 벧엘로 보내 가르치게 합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흉내 낼 수 있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에 가르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때부터 약 750년이 지난 어느 날, 사마리아 지방 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역사적인 대화가 요한복음 4장에 나옵니다. 복잡한 자신의 과거사를 다 아시는 예수님께 놀란 여인은 예배에 관해 묻습니다. 이에 주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시며 참된 예배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감추고 싶은 많은 수치와 고통이 있는 무너진 인생이라도 환난이 주제가 되고 성령이 스승이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거룩한 예배자가 됩니다. 우리가 예배 시작 때마다 고백하는 이 말씀은 '저는 도저히 하나님 앞에서 예배할 수 없는 죄인이지만 성령을 의지하여 말씀대로 예배합니다!'는 고백입니다. 이는 모든 예배와 모임에서 나아가 가정과 학교, 사회, 나라의 모든 일에서 고백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마음으로 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가 되고,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 헌재에서 사령관님의 답변이 큐티하는 사람의 은혜로운 간증 같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군인입니다. 군인에 대한 비전이 있고 다음 세대 후배 장병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고 모범이 되고 좋은 가치관으로 정립되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지난해 1월 30일에 수방사령관으로 임명되고 얼마 뒤 서해 민간인 공무원 피살 사건에 작전 책임 부대장에 대한 징계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고 상황을 평가하고 건의하고 확인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군인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뭔가 생각했습니다. 저의 교만이고 오만일 수 있겠지만, 풍토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달 뒤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2분 30초 안에 결정해야 했던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군인은 항상 영광이 아니고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그 2분의 상황이었지만 격추하라고 말할 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오게 된 상황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군인답게 용기 있게 담대하게 모든 것을 진술할 것을 약속드립니다.'여러분,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인이고, 예수 믿는 우리가 제대로 못 믿어서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니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땅을 빼앗기거나 차지하며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우리가 영원한 기업을 얻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 앞에서 떠나지 않는 가치관으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 믿는 태도를 보여주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