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떠나라]
왕하 17:9~18
요즘 뉴스에 그린란드섬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 섬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섬으로 80%가 빙하라고 합니다. 나사 과학자들 조사에 따르면, 빙하는 수백 년간 조금씩 녹아서 약해지다가 결국 2~3년 만에 크게 붕괴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점진적으로 녹던 것이 갑자기 무너지는 순간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하는데,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악이 200여 년간 조금씩 쌓이다 결국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을 자세히 기록하고 보여주시며 내 안에 있는 악에서 돌이켜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돌이켜 떠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점차로 행하는 불의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북이스라엘이 망했습니다. 숱한 전쟁을 겪고 많은 재앙을 당해도 내일을 생각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람도 땅도 다 사라져 버린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절망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제발 한 사람이라도 듣고 돌이켜 떠나라고 길게 쓴 판결문을 주십니다. 본문 9절부터 12절은 한 문장으로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로 인한 죄가 수없이 많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모든 이유가 한마디로 불의, 곧 하나님을 배역하고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반역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불의를 점차로 행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야 하는데 이방 사람을 따라 하며, 산당과 목상을 세우고, 우상의 종이 되어서 그 앞에서 분향하고 섬깁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돌판에도 기록하시고, 선지자를 계속 보내셔서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듣지 않으니 결국 멸망의 사건을 주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도 이렇게 점차로 행하는 불의에서 돌이켜 떠나라는 뜻입니다. 돌이켜 떠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내가 점차로 불의를 행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봐야 할 불의는 '남에게 큰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냐? 사람들 다 그러잖아.' 하며 몰래 죄악을 행하고 안 걸리면 반복해서 행하며 점차로 크게 저지르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늘 격노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성전의 기둥으로 세우셨는데 우리가 바알 기둥, 기복 기둥을 세우고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성전의 기둥으로 세우셨다는 것은 자신을 높이 세우는 기둥이 아니라, 성전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으로 십자가를 지는 기둥입니다. 그것은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세우는 기둥입니다. 내가 점차로 행하고 있는 불의를 회개하고, 나를 부르신 사명의 자리를 잘 지키며, 내 역할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기둥으로 서는 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합니다.
악인이 점차로 불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도 내버려두십니다. 하지만 택자는 그냥 두시지 않고 드러나게 하십니다. 게다가 각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몰래 행하던 불의를 아는 데서 멈춰 서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떠나야 합니다. 사실 돌이키는 것도 어렵지만 떠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안 들려서 듣지 않은 것이 아니고. 들리지만 듣기를 거부하고, 목을 곧게 하였습니다. 가족 신화에 갇히고, 지역감정이나 진영논리에 사로잡히고, 학교와 출신 배경 따지며 편드는 이런 것들이 본질상 전부 조상들같이 목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명령을 버리면 더 허망해지고 악순환이 이어질 뿐, 남은 것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이 허무의 고리에서 벗어 나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인데 이것이 큐티입니다. 큐티는 특정 행위가 아니라 날마다 정해진 성경 본문에 대해 질문하며 구속사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하며 나누는 것으로 신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큐티가 힘든 이유는 내 생각과 내가 옳다는 고정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듣지 않으니까 믿지 않고, 믿지 않으니까 목이 곧은 것입니다.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때마다 고난이 옵니다. 나를 말씀 앞에 앉혀두기 위해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수고하고, 상황과 환경, 사건도 수고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좋아져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됩니다. 진짜 승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면 남은 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버린 인생은 자기들을 위하여 살며 세상의 행복을 목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우상 만드는 일입니다. 우상숭배는 자신을 우상에게 팔아버리며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죄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복을 주실 때 그들이 그 은사를 가지고 점차로 불의를 행하다가 심판받아 제거되리라는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하지만 다 없어진 것 같은 환경에서도 남은 그 하나를 통해 놀라운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구속사입니다. 이렇게 남은 자가 되게 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오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는 말씀이 들리는 사람, 말씀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사람입니다.
오늘 공동체 고백은 한 장로님의 나눔입니다. 장로님의 두 자녀가 모두 외국에서 잘 지냈고, 그곳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파견 기간이 끝날 때 아이들을 강제로 한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직장 선후배 자녀들이 외국에서 살고 거기서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영어 결혼식을 참석하게 되었는데, 슬그머니 지난 결정을 후회하는 마음이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 우리들교회에 잘 정착하여 자녀들이 목자로 섬기는 은혜를 주셨는데 앗수르를 부러워하고 두려워했던 마음을 목장에서 회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목장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말씀 안에서 안 되는 모습을 늘 나누고 가는 것이 축복이고, 특혜이고, 남은 자가 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돌이켜 떠나려면 점차로 행하는 불의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믿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다 잡혀가는 가운데서도 남은 자가 되게 하십니다. 착하거나 악하거나 예수님이 오시는 일, 말씀이 임하는 사건이 남은 것임을 알고 불의를 행하는 삶에서 돌이켜 떠나는 인생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