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왕하 16:10~20
지난주에 이어서 다윗과 같지 아니한 아하스 왕 이야기가 16장 한 장 전체에 기록이 됩니다. 본받을 것 없는 아하스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해 두신 이유는 우리가 너무 아하스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면 어떻게 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그 제단을 들여옵니다.
아하스 왕은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의 공격에 앗수르 왕에게 뇌물을 바치며 도움을 청했고, 그가 아람의 수도 다메섹까지 정복하며 멸망시켰습니다. 아하스는 골칫거리였던 아람이 멸망하니 앗수르 왕에게 잘 보이고자 감사 인사를 하러
다메섹으로 갑니다. 그런데 다메섹 한복판에 세워진 웅장하고 화려한 제단을 보고 반해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그는 즉시 제단의 모양과 구조 장식과 재료 제작법을 예루살렘으로 보내 제사장 우리야에게 그대로 만들라고 합니다. 역대 왕들이 산당을 폐하지 못했던 것이 악의 평범성이 되어 죄의식 없이 산당을 들여오고 제사를 자기가 직접 드리기까지 합니다. 아하스가 제단을 들여온 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평소 쌓아왔던 욕심이 폭발한 것입니다. 우리도 평소에 부럽고 탐나고 우러러보고 질투 나는 제단들을 들여오고 싶어 하는데, 그것은 내가 아직도 세상 왕 앗수르를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아야 할 진정한 제단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리신 제단, 곧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은 우리 안에 가득한 세상 두려움과 욕심을 말씀 보는 만큼 꺾는 것입니다. 십자가만이 앗수르 왕에 대한 두려움을 내어 쫓는 줄 믿습니다.
둘째, 여호와의 앞 자기 자리를 옮깁니다.
아하스는 예루살렘 성전에 앗수르 제단의 복제품인 새 제단이 생기니 여호와의 성전 앞에 있던 놋 제단이 너무 지질해 보입니다. 크고 화려하고 세련된 앗수르식 새 제단 옆에 230년 된 낡은 제단이 있으니 더욱 비교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스는 놋 제단을 여호와의 앞 자기 자리로부터 치워버렸습니다. 쓸모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우니 옮겨 버린 것입니다. 큐티책을 버리면 괜히 벌받을 것 같고 하기는 싫은 이것이 여호와의 앞 자기 자기를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무형과 유형의 성전이 있는데 내가 삶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인 우리야도 성전 옮기는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협하며 세상 방법을 가져와 하나님을 넘어서 앗수르 왕을 하나님 위에 놓습니다. 아하스의 가장 큰 악은 앗수르 제단을 가져온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웃시야가 나병에 걸린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아하스는 즉시 징계가 없으니까 죄를 행하는데 담대합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성전 양옆에 있는 물두멍을 떼어 다른 데 둡니다. 물두멍은 백성 전체를 대표해서 거룩한 마음으로 몸을 씻고 회개하며 예배의 자리에 나아간다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걸 떼어서 돌판 위에 그냥 둡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뜻을 담아 거기 두신 것을 아하스가 자기 멋대로 옮기고 바꾸고 떼어내며 여기서도 영적 질서를 비틉니다.
산당 예배는 자기를 위한 제사입니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심이 실제로 누구를 위한 열심인지 정확히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 왕 앗수르를 더 두려워하고 더 섬기니까 세상을 기준으로 놓고 그 정해진 자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여러분은 자신의 자리를 옮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옮기실 때까지 자기 자리를 하나님 앞에서 잘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2025년도 우리를 세우신 사명의 자리를 끝까지 잘 지켜 영육 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새롭게 시작하는 광주 채플 모든 성도님이 겸손하게 묵묵히 자리를 잘 지키면서 사명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일성수를 포기합니다.
18절에 이 모든 일이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아하스는 안식일에 쓰기 위한 두 개의 낭실을 또 옮겼는데, 안식일 예배 때 성전에 드나드는 덮개 있는 통로와 왕 전용 통로였습니다. 여호와의 성전에 이르는 특별한 통로를 앗수르 왕의 눈치를 보고 성전으로부터 떼어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가 올 것 같지만, 아하스처럼 세상 왕 앗수르의 눈치 보며 살게 됩니다. 세상의 힘과 돈, 명예와 성공 즐거움을 두려워하면서 결국 앗수르의 노예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하스 왕이 앗수르 제단을 가져와 섬기며 성전을 옮기는데 안 된다고 말해 주는 제사장이 없습니다.
여러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주일성수가 왜 중요합니까? 십계명에도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쉬셨기 때문에 복사품인 우리도 7일 중 하루를 쉬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를 기억하기 위해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해서 지켜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큐티와 목장 설교 예배와 나눔이 모두 우리를 성전과 잇는 통로, 낭실입니다.
아하스는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서 16년 통치하고 아들에게는 치워야 할 쓰레기만 엄청나게 남겨놓고 갔습니다. 역대하 28장 22절에 보면 아하스 왕은 곤고할 때 더욱 범죄하여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 지내며 옆에 있는 모든 나라와 싸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선한 왕으로 평가받는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됩니다. 이는 다윗 언약을 이루기 위한 여호와의 열심과 의지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좌절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택자라면 어떤 어려운 환경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실하게 지켜주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면 그 양식과 구조를 다 들여옵니다. 세상 양식을 공부하다 보니 여호와 앞에 자기 자리를 다 슬쩍 옮깁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가 점점 멀어지니까 주일성수를 포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다윗 왕조는 이어진다고 하십니다. 어떤 불행과 기가 막힌 환영에도 오늘 말씀을 듣는 분에게 다윗 왕조가 이어질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