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길을 잃다]
이영재 부목사
삼상 21:1~15
5년 동안 우리들 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영국 맨체스터로 가게 된 이영재 목사입니다. 오늘 광야에서 길을 잃은 물맷돌의 영웅 다윗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경은 그의 흑역사를 집요하게 쫓아가서 하나씩 열거합니다. 광야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은혜 누리시길 바랍니다.
첫째,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칼을 꽂고 창을 던지려 합니다. 다윗은 너무 억울하고 배신을 당해 피눈물이 나는 상황이고, 인생에 모든 소중한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천부장 자리를 잃었고 아내 미갈과 목숨과도 같은 친구 요나단과도 헤어집니다. 도망자가 된 다윗은 배가 고팠고, 제사장들이 지내는 놉으로 도망갔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이 왜 혼자 왔냐고 묻자, 다윗은 왕의 명령으로 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다윗이 간청하자 아히멜렉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줍니다. 그 떡을 먹으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나 하나님이 다윗을 먹이십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며, 사랑은 율법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실수보다는 배고픔에 집중하십니다. 여기서 생명의 떡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넘어지고 쓰러지고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고 조롱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실패 자리에 찾아오시고, 무죄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12년 전 선교사 준비를 위해 북아일랜드에 가게 되었고, 한인교회에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이민교회가 끊이지 않는 갈등으로 마치 놉땅 같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내가 갈등에 휘말리게 되었고, 저는 아내를 정죄하고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부관계도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분노와 좌절, 무력감, 우울감을 한 번도 공동체에 이야기해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무너지면 사람들이 비웃을 것으로 생각했고, 하나님이 저를 쳐다봐 주시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광야를 가리고 안 넘어진 사람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여러분, 지금 혹시 어떤 광야 가운데 있으십니까? 광야에서 넘어져도 생명의 떡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두가 조롱해도 나는 널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이며, 일어나서 제대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고, 그 고백을 통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둘째, 내 안의 사울을 죽여야 합니다.
다윗은 진설병의 은혜로 배고픔을 극복했지만 두려움이 끝나지 않자,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또 거짓말을 하며 창과 칼을 구합니다. 제사장이 칼이 있다고 하자 그 칼을 달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골리앗의 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물맷돌로 블레셋을 이겼던 다윗이 그 은혜를 잊고 두려워지자, 광야를 이기고 벗어나고 싶어 블레셋의 칼을 달라고 합니다.
저도 이민교회에서 길을 잃어 칼과 창을 찾게 되었습니다. 물맷돌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울이 누구인가 찾았더니 아내 때문에 이 비참한 광야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야가 고통스럽고 비참할수록 잔소리의 창과 칼이 아내를 향했으며, 저의 칼과 창으로 광야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교회에 와서 양육을 받으며 저의 악과 음란함에 대해서는 창을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안에 있는 사울 왕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칼과 창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광야는 칼을 드는 곳이 아니고, 말씀의 검으로 내 안의 사울을 죽여야 하는 곳입니다.
셋째, 공동체를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사울이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사울의 신하를 만나게 됩니다. 너무 놀라 도망가며 미친 듯이 뛸 때 우리는 보통 실수하게 됩니다. 가드는 블레셋이고 골리앗의 땅입니다. 결국 블레셋의 칼을 들고 자기 발로 블레셋에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이 죽인 자가 만만이라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다윗은 심히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침을 흘리고 미친 척하며 합니다. 광야의 마지막은 바로 자기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골리앗과 사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다윗이 광야 앞에서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갔더니 자신처럼 끝난 것 같은 빚지고 환난 당하고 원통한 인생들을 만나게 됩니다. 다윗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요? 다윗은 아둘람 공동체를 만나게 되며, 여기서 인생의 소망을 찾습니다. 그래서 광야가 축복입니다.
광야의 시간 끝에 저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고 아둘람 공동체인 우리들교회로 온 저는 양육을 받으며 저의 광야인 이민교회에서 고생과 헌신, 참았던 나눔을 제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제 나눔을 들으시고 한번은 교회가 목사님 때문에 수고했겠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으로 저의 열심과 성품과 헌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으며, 저의 헌신 뒤에 숨어있는 사울의 야망을 보게 되었고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민교회 성도님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 수고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나를 위해 수고했다고 생각하니 성도님들께 너무 미안했습니다. 우리들 교회처럼 영국 맨체스터에도 환난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살아나는 귀한 공동체가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세상은 광야에서 넘어진 자를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생명의 떡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골리앗의 칼로 광야를 벗어나고 싶지만, 하나님은 말씀의 검으로 내 안의 사울을 죽여야 하는 시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 내가 무너지고 끝이라고 여기는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아둘람 공동체를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이 힘든 시간을 지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다윗의 시편 23편 말씀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