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이태근 부목사
삼상 17:41~54
광주로 파송을 받게 된 이태근 목사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처럼 살아온 인생이 아니기에, 그렇다고 골리앗은 되기 싫고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리고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던 사울의 모습이 저의 모습이 아니었는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신 말씀도 이유가 있을 테니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유명한 골리앗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그저 블레셋 사람이라고만 칭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든 사람을 앞세우고 나왔다는 것은 골리앗도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울과 이스라엘 진영은 그런 골리앗 때문에 사십여 일을 수치와 조롱을 당하며 떨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수치와 조롱을 당할 수 있지만, 어떻게 당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수치와 조롱을 잘 당하려면 자존감의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반면 열등감으로 내공이 없으면 말 한마디에 주눅 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열등감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교만한 사람은 열등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도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칭찬이 아니라 가소롭게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미리 준비한 물맷돌을 주머니에 숨기고 손에는 막대기를 들어 골리앗의 교만함을 부추기기 위한 나름의 고도 전술을 씁니다. 다윗은 골리앗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소년처럼 자라지 않았고, 아버지의 양을 지키며 목동으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자랐습니다. 목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자가 없다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 가자고 아무리 멋있게 선포할지라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나 잘하세요!가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방은 어록으로 하는 것이 아닌 나의 부끄러운 죄를 회개하는 애통한 마음과 십자가를 진 경험으로 하는 것입니다.
둘째, 칼과 창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 골리앗은 칼과 창으로 나왔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이처럼 우리가 누구의 이름으로 나아가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의 일을 하면서도 내 이름을 앞세울 때가 많습니다. 목사인 저도 그랬습니다. 사울처럼 겸손하게 시작한 것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 아니라 나를 위한 전쟁이었고, 나의 기념비를 세우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여러 번의 치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왜 골리앗이라는 유명한 이름을 놔두고 그를 단지 블레셋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말할까요?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나의 이름으로 치르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은 칼과 창에 있지 않다고 하셨는데 저는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이 참 부담스럽고 언제 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한참이나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목사의 직분을 가볍게 경홀히 여겼다기보다는 목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기에 능력, 지혜, 지식 등 모든 것을 두루두루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 마음이 항상 불편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모습처럼 보이는 저의 이런 모습이 실상은 내 손에 잡히는 칼과 창이 없어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참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셋째 갈고 닦은 물맷돌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는 순간 거대한 다곤 신당이 땅바닥에 엎어진 것처럼 거인 골리앗도 땅에 고꾸라지고 말았습니다. 담임목사님 책에 보면 이 구절을 짧게 해석해 주셨는데 목사님의 살아오신 인생을 우리가 잘 알기에 짧지만, 임팩트 있게 다가오는 한 문장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한 번에 승리했습니다. 칼이 아니라 물매로 이겼습니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서 이야기합니다. 저도 칼이 아니라 걸레질로 이겼습니다. 집순이로 이겼습니다. 하나님은 설교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게 하십니다. 골리앗은 물맷돌에 맞아 쓰러졌지만, 그 목숨 줄을 끊은 것은 결국 자신의 칼입니다. 돈이 있어서 권세가 있어서 결국은 그 칼로 내가 죽임을 당한 형국입니다. 다윗은 사사로운 전쟁에 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전쟁을 치렀기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싸운 후 전리품을 취하지 않고 골리앗의 머리를 취했습니다.
3주 전쯤 전라도에 사시는 한 목자님 따님의 결혼식이 있어서 전주에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방문할 때마다 심방 요청을 받을 때가 많은데 그날도 한 여자 집사님이 난리가 나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을 결혼식장에 데리고 나와 친구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남편 집사님이 늦게 오셔서 광주에 사시는 성도님들께서 음식점을 알아보고 부부가 따로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 하고 식사 후 바로 커피숍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동선을 짜고 구원을 위해 서로 도왔습니다. 그 결과 그 부부를 목장에 초대하기로 했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수요일에 광주 채플로 내려가라는 담임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때 일들이 떠오르면서 앞으로 광주 식구들과 함께하게 될 구원의 역사가 기대가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한 영혼을 위해 달려오신 것처럼 우리도 함께 그 길을 걸어가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려면 수치와 조롱을 잘 받아야 하고, 칼과 창을 내려놓아야 하며 갈고 닦은 물맷돌이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지난 시간이 세상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며 살아왔을지라도 이제는 수치와 조롱을 잘 감당하고 다윗처럼 당당하게 주님처럼 담대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