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
왕하 13:19~25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가장 많이 불린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엘리사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에게는 일곱 번, 엘리사 선지자에게는 스물아홉 번 쓰였습니다. 갑절의 영감을 구한 엘리사에게 엘리야보다 갑절만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은 엘리사의 마지막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마지막까지 거룩한 분노로 양육합니다.
요아스는 엘리사가 활로 땅을 치라는 명령에, 확신과 열정이 부족하여 세 번만 치는 데 그쳤습니다. 이는 가족과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였기에, 엘리사는 자기 생각으로 가득한 요아스를 보면서 애통하다 못해 분노 합니다. 엘리사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인데, 거룩한 분노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죄악을 향해 분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많은 일로 화를 냅니다. 내가 입을 피해와 손해 때문에 본능적으로 분노하는데,
하나님의 진노는 이런 감정폭발이 아닙니다. 거룩한 분노는 언제나 그 대상이 죄악입니다. 죄 때문에 좌절하고 분노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죄에 대한 분노는 바꾸어 말하면 구원을 위한 애통함입니다. 이 마음으로 상대방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양육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사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양육에 힘씁니다. 우리도 마지막까지 큐티를 부르짖으며 사명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죽어서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불 수레 불 말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와 달리, 엘리사는 전국을 누비며 사역하다 죽을병에 걸리는데, 죽는 모습이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엘리야를 너무 좋아하지만, 예수님의 예표는 엘리야보다는 엘리사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비참한 죽음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20절에 엘리사가 죽으니, 모압의 도적 떼들이 북이스라엘에 왔는데, 한 사람의 빈자리가 이렇게 큽니다. 해가 바뀌어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도적 떼를 보고 놀라 다급하여 시체를 던졌는데, 그곳이 엘리사의 묘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마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습니다. 엘리사가 생전에 많은 기적을 행하며 사명을 감당하며 가니까 유골이 되어서도 죽은 사람을 회생시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 회생한 사람, 부활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죽음 같은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끊임없이 생명력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죽은 뒤에라도 어떻게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책을 통해 '이혼 안 했다. 죽지 않고 살았다. 주식도 끊었다.' 등등의 은혜받은 얘기가 많으니, 제가 죽은 뒤에라도 제 설교와 책을 통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셋째, 언약 때문에 영원한 회복을 누립니다.
아람왕 하사엘과 벤하닷이 대를 이어 북이스라엘을 학대하는 심판은 여호아하스와 요아스 모두가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멸절되고 진멸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언약 때문에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북이스라엘을 이어가게 하십니다. 이렇게 다시 살리시며 엘리사 뼈에 닿기만 해도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를 이어 가시는 것은 그만큼 생명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든, 육적으로든 생명은 절대 지켜야 합니다. 피투성이가 되고 뼈처럼 말라비틀어지는 상황이 되어도 꼭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람 왕의 대를 이은 학대로 요아스가 성읍을 다시 빼앗겼는데,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준 구원의 화살 예언대로 벤하닷을 세 번 쳐서 잃어버린 성읍을 회복합니다. 이들은 여전히 금송아지 섬기는 죄악 가운데 있지만 엘리사를 통해 주신 약속을 이루어주십니다. 회복하다는 히브리 단어가 슈브인데,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회복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땅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의 회개는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요아스는 세 번 땅을 친 만큼만 회복했습니다. 이런 일시적인 회복 말고 영원한 회복을 해야 하나님의 사람인 줄 믿습니다. 성경이 언약이고 내 죄를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 회개를 통한 영원한 회복을 위해 큐티를 해야 합니다. 큐티를 하면서 항상 우상을 깨닫고 그 우상을 없애기 위해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적용한 기쁨 때문에 다음날 말씀을 또 보게 될 것입니다.
공동체 고백은 한 청년의 양육 숙제 나눔입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도 이혼하지 않으니, 가정이 회복될 기회가 있었다며 이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외도 사실에 엄마는 잠만 자면 악몽을 꾸며 소리 지르고, 동생들은 분노에 가득 차 있고, 나는 내 학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이 현실이 너무 벅찼습니다. 그래도 나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가지 않고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며 자기연민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돌탕집탕 설교를 통해 자신이 집에 있는 이유가 진정한 헌신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계산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집탕이기 때문에 늘 정죄와 판단, 자기연민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여러분, 정죄와 판단을 하면 아직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방황하던 동생들도 부모님도 각자 자리 지키면서 목장과 교회에 붙어있었습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던 엄마가 가정에서 아버지를 우선순위에 놓는 변화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래도 말씀을 들으며 붙어가다 보니 어머니의 노력과 적용이 대단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모든 식구가 돌아오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은 마지막까지 거룩한 분노로 양육하고, 죽어서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내가 큐티하며 회개한 그 언약 때문에 영원한 회복을 누립니다. 우리가 혹시 죽을병에 걸렸다 해도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어 거룩한 분노로 양육하다 보면, 살아서도 죽어서도 죽은 자를 살리는 엘리사의 뼈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