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은총을 받은 사람아]
김성우 부목사
단 10:9~14,19~21
오늘은 청소년부 헌신 예배로 드립니다.
본문 9절에 내가 그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의 음성을 들을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느니라라는 말씀이 정말 우리 청소년부 아이들을 위한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잠이 들어도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이 정말 은혜입니다. 잠든 다니엘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우리 예수님이 찾아가셔서 다니엘을 깨웁니다. 다니엘이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다니엘을 통해 큰 은총을 받은 자에 대해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첫째, 깨어나고 깨닫고 일어섭니다.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은 옆에 깨우는 사람이 있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깨워주니 잠에서 일어났습니다. 청소년 중에 영원히 잠들고 싶어서 정신과 약을 모두 먹거나 잠들고 싶어서 술을 마신 친구,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닌 것을 알고 도박에 빠진 친구들도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스스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찾아가서 어루만지며 깨워주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루만진다는 닿다, 이어지다는 의미인데, 예수님과 내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해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사건은 나를 찾아오셔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닿고 이어지는 시간입니다.
제 인생에서 잊고 싶었던 시절은 바로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시절인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고등부 목사로 세우셔서 잊고 싶었던 고난의 때와 지금의 제가 닿아 이어지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절을 잊고 싶으십니까? 나의 그 어린 시절을 껴안아 주고 그 아픔과 닿아야 깨어날 수 있습니다. 홀로 외롭게 잠들어 있었던 시간을, 말씀을 통해 나누면서 청소년 아이들의 손을 잡아 주며 그 눈물을 닦아 주길 바랍니다. 깨달으면 일어서게 되어있습니다. 그저 손을 붙잡아주고 울어주고, 오늘 주신 말씀으로 함께 큐티하면 깨닫게 됩니다. 내 세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둘째, 스스로 겸비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다니엘이 깨닫기 위해서 한 일은 내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겸비했다는 뜻의 원어를 살펴보면 괴롭게 하다, 나를 학대하다로 정말 애통해하면서 울부짖는 기도가 스스로 겸비하며 하는 회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사람은 내 속에 내 죄악을 직면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왜 이렇게 기도하며 자신에 대해 절망했을까요? 그는 현재 페르시아 대국의 2인자로 명성과 높은 지위에 있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있지만, 포로 귀환 후 백성들이 거할 처소도 없고 성전을 재건하지 못해 예배조차 못 드린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기력함에 옷을 찢고 마음을 찢고 자기 중심에 있는 깊은 죄악을 직면하며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13절에 보니, 바사 왕국의 군주가 다니엘을 가로막았다고 합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는 통치자이자 능력자이며,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인본주의의 끝판왕입니다. 내 생각 내 판단으로 자녀가 공부 잘 하고 승리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사왕국의 군주입니다.
1년 전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상황이 안 좋아 이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는데, 치매가 많이 진행되어 어머니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새아버지가 힘들게 해서 죽고 싶다고 하시는데,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큐페 기도회 시간에 스스로 겸비하기로 결심하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새아버지를 정죄하고 원망했던 죄와 바사 왕처럼 내 맘대로 부모님이 이혼하도록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저의 죄를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주일 날, 아내와 함께 어머니 댁 근처 교회에 두 분을 모시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교회가
목세에 참석하여 큐티인을 쓰는 교회였고, 새아버지께서 온전치 않은 어머니를 매주 모시고 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가치관으로 내가 결정하여 예수님이 오는 길, 구원을 가로막았지만 스스로 겸비하여 회개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신 줄 믿습니다.
셋째, 말씀을 먼저 보여주십니다.
바사를 다스리는 가치관은 돈과 힘, 헬라를 다스리는 가치관은 지혜, 지식, 문화이며, 로마를 다스리는 가치관은 옳고 그름의 법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가치관인 인본주의까지, 환경은 계속 바뀝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의 지혜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습니다. 사건과 군주가 오기 전에 먼저 일어나 큐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만, 바사 헬라 로마의 거대한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항할 수 있습니다. 내 환경이 무너져 내리고 피투성이 같지만, 말씀을 읽으면 이것이 나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일으켜 세우는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청소년 시절은 잠들어버리기 쉬운 시간입니다. 이때 우리 아이들을 깨워야 합니다. 지금 다니엘은 물질과 영혼 세계, 꿈과 현실의 경계를 상징하는 힛데겔 강가에 서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지금 경계에 서 있습니다. 다니엘이 두 발을 딛고 다시 사명으로 일어선 것처럼 말씀을 깨닫고 일어나는 청소년들과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랜 시간 가정을 힘들게 한 아버지를 원망했었는데, 몇 해 전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고 영접하고 천국에 입성하셨습니다. 작년에 집을 정리하다가 오래전 아버지가 쓴 편지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드셨고, 어머니에게 환한 웃음과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고향인 흥남 부두에 투신하려고 여러 번 망설였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힘들어서 죽고 싶었지만 죽지 않고 살아내신 아버지를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프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아버지의 삶이 깨달아졌고 일어서게 되니 용서하고 아버지의 고통이 나의 고통과 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먼저 내 삶이 해석되고 깨달아지면 일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살아내고, 결정할 수 있도록, 다니엘과 같이 사명 감당하는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