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복을 바라며 누군가를 돕거나 섬긴 적이 있습니까?
오늘 묵상한 본문 구절은 욥기 30장 25절 - 26절입니다.
'고생의 날을 보내는 자를 위하여 내가 울지 아니하였는가 빈궁한 자를 위하여 내 마음에 근심하지 아니하였는가'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
이 구절의 의미는 욥이 내가 고생한자들 빈공한자들을 섬겼는데 지금 내 처지가 너무 비참하고 복을 바랬는데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는데 흑암이 왔다고 합니다. 기복의 마음으로 그동안 빈궁한 자들을 섬겼는데 그러면 결국 생색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인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욥처럼 기복적인 마음으로 무언가를 바라거나 그것을 바라고 섬긴적이 없는지 묵상해보았습니다.
저의 기복은 교제였습니다. 이런걸 고백하기도 부끄럽지만 저는 교제가 정말 하고 싶어서 부서를 섬기고 아웃리치를 간 사람입니다. 처음에 부서를 섬기고 아웃리치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좋았지만 잠시 시간이 지나니 나도 빨리 연애해야되는데 결혼해야되는데 라는 마음이 올라오고 조급해지니 생색이 올라오고 여기서 이렇게 시간낭비 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초등부를 섬기고 아웃리치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한 나눔과 사역을 하는것도 감사했지만 그 기쁨은 잠시였고 오로지 머릿속에는 교제뿐이었으니 생색과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초등부에서도 한 두명식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에는 조급함과 질투만이 올라왔고 이제는 부서에 있기도 싫을때도 많았습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러다가 나이만 먹는것이 아닐까..라는 생색과 불만이 올라왔는데 이런 모습이 오늘 욥의 모습과 같다는것이 인정됩니다. 기복이 중심이 되다보니 주님이 허락해주신 초등부와 아웃리치 지체들들과 만나면서 교제하며 웃는 그 순간들이 소중한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1달전에 초등부 동생과 저녁식사를 같이 한적이 있는데 그 동생이 제게 했던 말은 '형이 많이 바뀌었다. 전에 형은 다가가기 어려웠다'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그말을 들으면서 초등부 지체들 한사람 한사람이 날 지켜보고 있었구나 그런데도 난 그동안 날 뒷방 늙은 취급한다고 생색내고 햇었구나 그 말을 들으니 그때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들이 후회됩니다. 그리고 초등부 지체들이 날 소중히 여겨준다는 생각에 감사하였습니다.
아직도 저는 생색과 기복이 많은 죄인이라 내가 섬긴만큼 반드시 무언가를 얻어가야 한다 라는 생각이 강한 죄인이고 이로 인하여 불평과 기복이 올라올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것은 죄인인 제가 기복에 중심이 있기에 그런것이 인정됩니다. 이제는 기복이 중심이 아니라 허락해주신 지체들과 시간속에서 공동체 지체들과 잘 교제하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적용하기
초등부와 여러 공동체에서 웃으면서 잘 지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