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의 아들
작성자명 [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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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2.05
삼수하는 아들의 수능 시험 날 주신 말씀은 아가서 2:8-17절 이었습니다.
아들이랑 같이 읽어 가는데, 시험을 잘 볼 것 같은 느낌이 왔습니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의 말씀과
수능 즈음에서부터 시작된 아가서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야, 같이 가자”하는
하나님의 부르심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의 자퇴-재수-삼수로 이어지는 훈련이 일단 일단락되겠구나 싶은 마음으로 아들을
시험장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수능을 끝내고 온 아들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던 첫해 수능날의 바로 그 얼굴이었습니다. 그 어떤 모의고사보다 못 보았다는 것이었고, 아들은 한술 더 떠 “사람들이
왜 자살하나 했더니 이래서 죽는가보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고 했습니다.
실망한 아들을 “하나님은 항상 옳으시다,” “여기에 선한 뜻이 계실거야,”
“그분께 붙어 있으면 다시 길을 내신단다”하며 달랬습니다.
아들을 달래느라 당일날엔 실망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들은 “떨어지면 감사, 붙으면 회개”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적용하며 그 전날과는 판이하게 살아났습니다.(집착이 없는 아들의 성품 탓인지,
믿음 탓인지 잘 모르겟습니다).
“네가 싫어하는 지방대에 가도 괜찮니?” 했더니
“가게 되면 가야지”합니다.
그러나 정작 그날 저녁에 저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삼수의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게 끝나다니...
하나님, 제 아들이 그동안 회심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잖아요,
돌아와서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고 있잖아요.
“좋은 대학”의 표적이 필요한 아빠도 있잖아요.
고난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저를 두려워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지체들에게 그들의 두려움을 어떻게 없애라고 이러시나요.
무엇보다도 우리들 교회에 마음을 붙여 교회가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아들에게
우리들 교회를 계속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시는건가요.
이런 질문들이 고개를 들며 “어찜이니이까”가 자꾸 입밖으로 삐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 현재의 상황에서는 아들을 붙여주시는 것이 선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최악의 점수를 나오게 하셨나요를 거듭 물었습니다.
그리고 슬펐습니다.
고아가 된 느낌...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는 외로움...
하나님, 이번 일이 어떻게 선하신 것인지 해석이 안 되네요.
어떻게 선하신 것인지 말씀하여 주소서, 저는 모르겠나이다.
이렇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아들의 수능무렵부터 하나님은 아가서를 통해 넘치는 사랑 고백을
하여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 고백이 보증수표처럼 느껴져
가끔씩은 평안이 오기도 했습니다만, 마음의 상심도 그에 못지않게 따라왔습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기를 일주일,
아가서가 끝나는 날, 말씀 묵상을 하고 성경을 덮는데,
제 뇌리를 때리는 한 생각 -- “작은 여우”였습니다.
수능 날 본문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는 말씀도 주셨습니다.
아들이나 저나 그 말씀을 보기는 했지만, 작은 여우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불분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여우가 갑자기 확실히 보인 것입니다.
아들의 게으름이었습니다.
20년을 키워오며 본 아들은 “80%” 정도가 그의 최고의 노력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삼수를 하면서도 잘해야 80% 정도의 노력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 못 고치고 있는 아들의 병폐입니다.
아들한테, 이 얘기를 했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여러 번 너의 그 못다한 20% 때문에 하나님께로 경고를 받아왔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말씀을 해석할 줄 몰라 깨닫지를 못했는데,
이제 하나님이 보다 더 분명하신 목소리로 경고를 하시고 계신다.
20%를 다하라고. 이번의 낮은 점수는 그것에 대한 하나미의 응답이신 것 같다.”
너무나 정확하신 하나님!
아들의 현재에 딱 맞게 응답하신 하나님!
온 몸에 전율이 왔습니다.
그리고 감사도 왔습니다. “너의 고질병을 더 이상 두고 보실 수 없으셔서
너를 정확하게 훈계하고 계시니, 우리는 사생자가 아니구나.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구나“라고 아들에 말한 대로, 우리 모자의 기도에 응답하시며,
항상 최선의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 선명하게 느껴져서요.
아들에게 계속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우를 ‘잡으라”하시잖니.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지만,
잡는 사람은 너다. 여우를 잡는 것은 순전히 네 몫이다.
훈계를 따라 너를 극복하면서 나아가는 것과 여전히 너의 옛 습성대로
사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하며 그 선택을 할 사람이 바로 너라는 말이야.
20%를 더 한다는 것은 쉬워 보일지 모르나 이때까지의 너의 경험은 그것이 너한테는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 20%가 작은 숫자처럼 보일지 몰라도
너의 천성과 옛 습성이 너를 단단히 붙들고 있으니, 그것을 깨고 나오는 것은
쉽지 않아.
분명한 것은 네가 너를 쳐서 순종하든, 아니면 그냥 여전히 80%에 머물러 있든,
하나님께 속하기를 계속하면 여전히 하나님은 널 사랑하신다는 것은 변함 없다는 것.
하나님이 그러시니 엄마도 마찬가지야.
삼수의 결과가 좋지 않아도 여전히 너는 엄마의 아들이고, 엄마는 널 사랑할 거야.
그러나, 순종하지 않으면 너는 복을 조금 밖에 못 담는 사람이 될 거고,
순종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될 거야.
어느 쪽 길인가는 순전히 네게 달렸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주일 예배에 가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하나 더 남았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엄마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것이 아니지요. 아들 스스로가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 옷을 찢으며
깨달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마를 통해 주어진 것이지요.
그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것은 그런 호된 시련을 거치고 있으면서도 달라지고자 하는 ‘적용’의 시도가
별로 보이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의 적용을 위해 눈물 흘려야 하는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