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환난을 잘 당하고 있습니까? 환난 당하기 싫어 뛰쳐나간 곳은 어디입니까?
오늘 본문 구절은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는 이제 너희가 믿냐 라고 되물으시고 아직 멀었다. 너희는 각각 흩어지고 나를 부인할것이라고 말하시는 주님입니다. 하지만 이런 환난 당할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환난을 잘 당하고 있나 아니면 그 환난가운데에서 도망간적이 있나 라는 질문이 생각나서 한번 묵상해보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6번 넘게 이직을 해본 사람입니다. 대부분은 야근 관련해서 직장에서 상사들과 싸워서 그만두고 이직을 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지만 근본적인 것은 관계에서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 이직으로 도망을 쳐왔습니다. 야근에 대해서 이렇게 극으로 싫어하는 이유는 첫 직장에서 직속과장이 '나는 집가서 애보기 싫어서 야근한다'이 말을 들으니 그래 내가 너처럼은 안산다 라고 마음을 먹었고 야근을 매일 할 바에는 차라리 내 모가지를 잘라라라는 마음을 먹으며 야근을 강요하는 사람들과 많이 싸웠습니다. 그 야근을 강요하는 것이 예전에 저의 목을 조였던 가해자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 항상 회사를 고를때 야근을 최소화 하는 회사를 찾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회사를 찾더라도 저의 소통방식에서 문제가 있기에 동료들과 오해가 발생하고 소통에서 문제가 생기니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관계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에는 제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너희가 문제가 있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팀 단위로 일하다 보니 무조건 빨리 빨리 일하려는 제 방식에 문제가 있는것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싸우고 결국 공황과 우울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처음 팀장님에게 공황증상을 고백했을때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또 이직을 하게 되면 이런 악순환은 반복될것 같고 언젠가 결혼해서 가정을 책임질텐데 내 옆의 배우자도 책임지지 못할것 같아 팀장님에게 공황증상을 고백하고 붙어있는 적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붙어있는 적용을 하게 되니 감사하게도 저에게 맞는 일도 주시고 관계고난과 학폭에 대해 해석할수 있는 계기들을 주시고 정신과 약도 많이 줄게 해주시는 은혜도 주셨습니다. 어찌보면 환난을 당하라고 말해주시는 것은 평안을 선물주시기 위해 치루어야 할 값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저는 대인관계에서 배신당할것 같다는 두려움때문에 사람을 편견으로 바라볼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봐왔기에 사람관계에서 항상 최악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금 제게 허락해주신 이 회사에 잘붙어있는 제가 되기를 지금 제게 허락해주신 이 시간 속에서 저의 과거의 상처와 관계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되어 관계의 고난을 통과하여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적용하기
지금 회사에 잘 붙어있겠습니다. 단순히 연봉때문에 이직을 하는게 아니라 지금 허락해주신 환경속에서 상담과 정신과 치료를 통해 학폭과 관계고난을 잘 해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