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긴다는 추측을 받아 억울해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구절은 엘리바스가 이유없는 고난은 없다며 욥을 정죄하고 비난하기 시작하는 구절입니다. 사실 이 구절은 욥이 하지도 않은 죄를 나열한것인데 욥의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할것 같습니다. 자기마음대로 추측해서 정죄하는 것이 사람을 두번 세번 죽일 수 있는것임을 보여주는 사례인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억울한 사건을 받았을때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 라는 질문이 생각나서 묵상해보았습니다.
욥의 고난이 저의 고난 같아서 이해가 더 잘되는 것 같습니다. 따돌림을 당할때 제가 많이 당했던 것은 제가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모함을 받았고 이 오해로 인하여 다른 애들에게 어이없이 얼굴을 주먹으로 맞기도 했습니다. 예를들면 제가 다른 친구의 물건을 가져가지 않았는데 가져갔다고 모함을 받거나 등 이런 오해를 받아서 아무런 이유없이 맞으니 학교 생활이 지옥이었고 이 후유증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군대에서도 제가 하지도 않았는데 했다고 모함을 받으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화장실에서 목을 메달고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런 레파토리를 많이 당하다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다음부터는 저에게 누명을 씌우는 사람이 있으면 강하게 맞받아치고 선임들에게도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성격이 변하면서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라는 생존본능이 발동되어서 조금이라도 팩트에 어긋나면 사람들과 대판 싸우기도 했습니다.
오늘 말씀 본문에 모든것을 의롭게 판단하사니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제가 억울하면 정말 분해서 못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한번 허용하면 과거 괴롭힘 당했던 순간들이 반복될것 같아서 두려워 하고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욥의 당햇던 상황과 마음이 너무 제 상황과 비슷한것 같아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피해의식에 갇혀서 사람을 나쁘게만 보지 말기를 소망합니다. 아직도 사람은 배반할수 있다라는 생각이 많아서 항상 처음 만나는 사람을 경계하고 경직되어 있고 직장에서도 저에 대해 이상한 말을 하면 저도 모르게 발작버튼이 눌려서 파이터가 되는데 감정대로 피해의식에 갇혀서 분노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며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적용하기
억울한 상황이 있을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조곤조곤하게 강하게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