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니고데모의 변화
■ 성경구절
ampbull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7:50)
ampbull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 질문하기
ampbull 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변호하였는가?
■ 묵상하기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유대인 지도자 니고데모는 땅의 일만 생각헀기에 거듭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유명한 요한복음 3:16을 주셨는데, 그 구절 속에 거듭날 수 있는 답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늘 본문에는,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변호하는 수준이 되었다. 니고데모가 하늘의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자 반열에서 공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하기가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의 신앙을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나도 독생자 예수님께서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알지만, 땅의 일만 생각하는 나도 거듭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늘 가지고 있다. 나의 변화가 늦은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예수님을 알리고 다니는 수준은 되었다.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갑자기 바울이 생각난다. 바울이 평생 쌓아올린 업적을 어떻게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을까?
▪︎ 나는 땅에서 쌓아놓은 업적들이 끈질기게 땅의 일을 생각하도록 유혹하여 나의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방해물들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3장에서 땅의 일만 생각하던 니고데모가, 유대인 지도자였지만, 불이익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변호한 것은, 땅의 신분보다는 영생을 택한 결정이었다. 이것이, 니고데모의 수준에서는, 땅의 신분을 배설물로 여기는 적용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던 배설물로 여기는 부분에 대해, 니고데모를 보면서 새소망이 생기는 것 같다. 오늘 니고데모처럼 하나하나 적용해 가면서 변화해 가는 과정 자체가 땅의 일을 배설물로 여기는 것이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예를 들어, 건강한 몸을 배설물로 여기기는 힘들지만지 그 건강을 음주음란에 사용하지 않고 구원의 사명에 쓰는 것이라든가, 주어진 부, 주어진 시간을 구원의 사명에 쓰는 것이 배설물로 여기는 적용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3장16절을 주셔서 오늘을 사는 나에게까지 거듭남의 소망을 주신다. 그리고 나는 성령을 스승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율법을 스승삼았던 니고데모처럼 나도 성향상 많은 부분에서 율법의 영향을 받고있지만, 나의 이런 약점을 말씀공동체에서 매일 양육으로 나를 견인해 주고 있르므로 니고데모 보다는 훨씬 유리한 환경에 있는 것이다.
■ 적용하기
▪︎변하지 않는 나에게 절망하지 말고, 수준에 맞는 점진적 변화를 계속 이루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