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10 와서 보라요한복음4:27~42
제자들이 예수님이 계시는 우물가로 돌아와서 여자와 말씀하신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었더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뎌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화서 예수께로 오더라 그 사이 제자들은 예수께 음식을 잡수라고 하니 예수님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하시며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이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함이라고 합니다. 또한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고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이틀을 유하시며 믿는자가 더욱 많아지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믿게 됩니다.
내가 육적인 양식만 찾다가 지나쳐버린 사명의 양식, 알지 못하여 먹지 못하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키라는 부모님의 가르침 속에 모범생으로 성실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가난을 발판삼아 저는 학창시절과 20대를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20대 초반 결혼까지 하고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직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의 결론은 조금만 무리를 하면 바로 육체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40대 중반에 갑자기 찾아온 이석증은 내 몸의 가시가 되어 때론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연약한 육신을 안고 있기에 열심을 내려 놓아야 하는 것이 사명이기도 하지만, 늘 내안에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고 죄가 되는 것 같은 잘못된 생각이 뿌리 깊이 있고 마음 먹은 일을 바로 실행하고 결과를 얻어냄으로 얻는 성취감으로 나를 채찍질하고 있기에 하나님은 연말에는 허리로 신년에는 코로나로 나를 부르셨습니다.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없는 처지가 되면 저는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고 그렇게 열심히 달려 왔지만, 아이들은 아프고 내 손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한탄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모두 하나님이 아닌 내가 중심이 되어 왕노릇하고 살았던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을 알기에 입다무는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며칠전 아들과 이야기를 하다 밤마다 술을 마시는 것이 잠을 자기 위한다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정신과를 가야한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모두 강박과 불안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남편에게 내 한마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저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말을 하였기에 남편은 아들에게 병원을 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어제 아들이 피부과를 다녀온 후 약국에서 수면개선제를 사왔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수면제를 처방받지 약국에서 약을 받아왔느냐고 했더니 알아서 한다고 하니 더이상 할 말이 없었고 가만 가만 생각하니 아들이 그렇게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것 같아 믿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저희 부부는 아직도 성년이 된 아들을 믿지 못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기에 아들은 늘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아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했다. 고생했다. 하는 지지와 격려의 말인데 아직도 잘 내려놓지 못하고 있어서 남편에게도 아들을 믿고 맡겨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런 남편이 저녁에 아들이 약국에서 약을 받아온 것을 보고 화를 내며 병원에서 정확한 처방을 받아야 한다며 약을 반납하고 오라고 하니 아들은 반납을 해 왔습니다.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심지어 걸으면서 술을 마시는 아들의 모습을 봐야하는 아빠의 심정은 역장이 무너지는 상황이겠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좀더 아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지지하고 믿어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큰 아들이 비록 아빠의 카드로 약을 사왔다지만 환불을 받아왔을 심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습니다. 큰 아들은 마음도 너무 여리고 또 저와 같은 불안과 강박이 있기에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너무 여린 마음을 가진 아들입니다. 한참 엄마의 손이 필요한 예미한 시기에 저는 한푼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양육자를 바꿔가며 아들을 양육했습니다. 적당히 먹고 살만하니 엄마의 따뜻한 품보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대안학교로 또 외국으로 아들을 보내며 세상의 왕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하였습니다. 그 삶의 결론이 아들은 많은 돈을 벌어 세상 성공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자신, 하려고 해도 유혹에 쉽게 넘어지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아들은 스스로 책망하며 더 깊은 좌절감에 빠질 것인데 저희는 그런 아들의 말을 듣기보다 늘 내가 옳도다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 관심 받지 못하고 조롱받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본 수 나의 모든 것을 아는 그리스도를 보라며 사람들을 우물라고 불러 옵니다. 그리고 많은 사마리아인둘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됩니다. 저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남편을 갈아치우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찌질한 사람 실패한 사람이라며 무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마리아 여인은 아무것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와서 보라하니 많은 사람이 따라옵니다. 아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병원도 약도 아닌 오직 예수님을 만남으로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실 수 있는데 와서 보라는 말이 아직도 아들에게 먹히지 않는 것은 내가 여전히 나의 물동이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세상 성공이 나의 존재 가치이고 돈이 있어야 편안할 수 있다는 끈질긴 나의 죄로 인해 와서 보라는 말이 먹히지 않고 있으니 통한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주님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인생입니다. 몸은 아프고 아들은 병들어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지금이 사마리아 여인같은 상황인데 여전히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확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힘도 없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아들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엄마의 때를 지키지 못하고 아들을 아프게 했던 제 죄를 먼저보고 아들의 구원을 위해 통회할 수 있는 엄마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에 반드시 가족구원의 사명을 감다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