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부활의 알곡으로에스더야,
돌아오는 주일(20)은 한국에서 101번째 맞는 추수감사절이란다.
근데 울 교회도 이웃 교회도 왠지 조용하구나.
왜 그런 진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서운해서 아빠가 주일학교 부서에
작은 행사를 준비해 놓고 있다.
우리끼리라도 101번째 맞는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새기고 감사하는 찬양을 부르자구나.
구약에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 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던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땅의 소산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려왔단다.
(그 후로,혹은 그 전에도)
감사절은 미국보다 훨씬 전부터 유럽에서도 이미 지켜지고 있었는데
정통파로 알려진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절기를 가톨릭의 절기로 간주하여 이를 지키지 않고
추수감사절을 크리스마스 절기 대신에 지켰을 정도란다.(무시기~)

청교도들은 영국의 제임스 1세가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처음에 간 곳은 네델란드 이었는데
여의치 않아서 다시 미국으로 가기로 하고
그 준비를 위해 3년의 기간을 보내야만 했단다.
재미있는 것은, 청도교들이 직접 회사(런던 버지니아)의 사원들이 되어
7년 동안이나 일해서 메이플라워호를 구입한거 아니?
그러니까 총 10년을 꼬박 준비한 게지..
그 후(1620.9.16)에 180톤의 작은 배에 102명이 타고
항해를(65일)한 끝에 같은 해 12월 21일 푸리무스에 도착하였고,
풍랑과 식량난으로 많은 고생을 한 이들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들은 그곳의 땅을 개간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약 반수인 44명이 사망하였는데도
인디언에게 사람 수가 적어지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장례식도 제대로 못 치른 때가 많았다고 하더라.
우여곡절 끝에 인디언과 화친을 맺고서 옥수수를 심는 법을 배웠고
1621년 10월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하나님께 바쳤단다.
이 날 바로 인디언들도 초청되었는데
우연히 사냥꾼이 부근에서 칠면조를 잡게 되어 칠면조 고기를 먹었단다.
근데, 추수감사절에 칠면조 고기를 먹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면 웃기지 않니?
시간이 흘러 흘러서 1789년에는 죠오지 워싱턴 미국 대통령이
순례자들이 지킨 첫 감사절을 기념하여 나라 전체에다가 공식적으로
추수감사절 날 을 발표했는데 다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이란
왕정시대의 한 관행이라 하여 또 중단시켰다지 뭐냐?
(누구 말이 맞는지 아빠도 모르겠다)
그 후 모 잡지사의 부인(헤일)이 추수감사절에는
남과 북이 적개심을 버리고 투쟁을 중지하자는 캠페인을 벌였고
마침내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그녀의 호소를 진지하게 듣게 된다.
이리하여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 목요일을
국가적 감사절 날로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란다.
실제로 당시 남북 전쟁이던 남군과 북군도 이 날 하루만은
휴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로부터 미국에서는 해마다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켰는데 국내에서는 장로교가 1904년 감사주일(11.10)을 시작한 이래
교파 회의를 거치면서 주일로 옮겨 현재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단다.(아하~)
에스더야!
생각보다 추수감사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절기란다.
살롬이라는 말의 의미처럼 그냥 편안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방금 살펴본 대로 전쟁 가운데서, 혹은 그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도
오늘이 있게 하신 그 분에 대한 고난 중의 감사임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너희가 너희의 소산을 먹을때 너희에게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신 것같이,포도나무 열매와 온갖 곡식의 소출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반역의 죄로 얼룩진 제게 거듭 인애를 베푸시고 두 딸이 아름답게 자라게 해
주신 그 분은 여호와 입니다.
거짓없는 사랑과 자비함으로 이웃의 필요를 돌보는 가운데 내 정체성을 확인하게
하시고 다시한번 무명한 자 에게 복음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게 하시는 주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2005.11.9 헷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