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모델링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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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3.12
터키, 이란, 이라크.. 중동의 이런 지역을 소아시아라고 한다.
소아시아 지역은 바울의 주요한 선교여행지들이다.
1세기 기독교가 한창 왕성했던 곳들, 기독교 문화의 발상지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쪽은 페르시안 벨트로 굳게 싸여있다.
두껍고도 두터운 페르시안 벨트.
그 속에선 오히려 이슬람 문화가 춤을 추고 있다.
기독교는, 기독교문화는 그들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한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기독교도들에 대해 무서운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예수쟁이들은 명함도 못낸다.
교회사를 보면,
중세의 십자군 전쟁.
예수님의 이름으로, 십자가를 내걸고 수행했던 전쟁이었건만,
이름과는 걸맞지 않게 그만큼 추악하고 불의했던 전쟁은 역사상 또 없었다.
십자군의 이름으로 크리스천들은 이슬람교도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이가진 여인의 배를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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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랬다.
안티 모델링이었다.
그때 십자군이 활동한 소아시아 지역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기독교적 문화권이 되고 말았다.
기독교는 씨도 안먹혀 들어가는 딱딱하고 굳은 돌짝밭이 되고 말았다.
안티 모델링 이펙트이다.
그뿐이 아니다.
영국 정부가 중국에 아편을 팔기위해 아편전쟁을 시작한 직후,
아편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영국 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 광경을 보고, 허드슨 테일러는 말했다.
우리 모든 선교사들이 1년 동안 할 수 있는 선한 일보다 훨씬 더 큰 해악을 그들은 단 일주일 만에 저질렀다고..
안티 모델링이다.
불신자들이 혀를 내두를 안티 모델링.
그래서 그들은 지금 고개를 돌린다.
안티 모델링 이펙트다.
미국은 어떤가.
북미의 그리스도인들은, 미국 정부가 인디언 원주민들과 세운 수많은 계약들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그들의 씨를 말리면서,인디언들에게 선교사를 보냈다.
총칼을 번쩍이며 말 위에 높이 앉아 예수믿으라고 소리높이 외쳤다.
그래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더했다.
아프리카에서 멀쩡한 원주민들을 총칼로 잡아서는 노예로 만들고,
그 노예들을 가득 태운 노예선에 선교사를 태웠다.
한쪽 구석엔 어김없이 성경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노예선은 그렇게 선교사와 함께 움직였다, 부끄럽고도 낯뜨거운 일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미국의 항구도시로 남북전쟁의 발발지인 찰스턴에서 출항한 노예선 중에는 그 배의 이름이 선하신 예수의 배 라고 하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
안티 모델링이다.
오늘 마태복음 23장 13-22절을 보며, 안티 모델링을 묵상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들이 못들어갈 뿐아니라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못하게 했다.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했다.
안티 모델링이다.
도저히 본받을 수 없는, 본받아선 안되는 모델링,
그 전형을 1세기의 영적 지도자들에게서 본다.
무섭다.
1세기 때나, 근세나 할 것 없이 크리스천들이, 크리스천이라고 이름하는 자들이 안티 모델링이 되었던 예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 본문에선 그런 자들을 가리켜 눈 먼 인도자라고 했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나 역시 눈 뜨지 않으면,
영안이 밝게 뜨여있지 못하면 그들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그래서 또 아버지를 부른다.
예수님의 이름앞에 두손을 든다.
내 눈을 밝혀달라고,
안티 모델링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눈 먼 지도자가 되어 저주받는 비참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오늘도 또 아버지를 부른다.
예수님의 이름, 그 이름 앞에 내 이름자 석 자 올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