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분의 청중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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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3.11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반응만을 의식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면 제약 가운데 갇히지만,
하나님만 두려워하면 주님께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다.
다른 청중을 의식하는 데서 돌이켜 오직 최후의 청중이요, 최고의 청중인
단 한 분의 청중, 하나님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겠다는
코람데오의 삶이 존재 할 때,
우린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릴 수 있다.
우린,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기뻐할 수 있다.
안수현씨의 삶을 다룬 책 , < 그 청년 바보의사 >에 나오는 말이다.
오늘 마태복음 23장 1-12절을 보며, 단 한 분의 청중을 묵상한다.
바리새인들은 그러지 못했다.
단 한 분의 청중,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을 의식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잘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길 좋아했고,
시장에서 문안받기 원했으며,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받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그랬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중받으려 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놓친 것이 있었으니,
그건 곧 단 한 분의 청중,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것이었다.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칭찬받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섬기는 자가 되어라,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라,
그리해야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사람,
단 한 분의 청중에게 칭찬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느니라..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다.
오늘 하루도,
눈에 보이는 사람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단 한 분의 청중,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칭찬받는 삶이고 싶다.
그래서 또 아버지를 부른다.
그분의 이름앞에 내 이름자 석 자를 올려드린다.
이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의 심정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의 창을 힘차게 연다.
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그리고,
기온마저 퍽이나 포근해졌다.
내마음도 내 기분도 한결 업되는 멋진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