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당하는 아이들?
작성자명 [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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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1.10
고린도후서 6:11~7:1
이사야나 시편 큐티가 고린도후서 큐티보다 어렵다 고 말하면 저에게는 좀 이상하게 들립니다.
보통 신약이 구약보다 쉽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특히 서신서는 한통의 편지이기에 아무리 잘 나누어놔도 앞뒤가 연결이 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덕분에 아이들하고 하는 큐티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도 겨우겨우 하고 있는 QT인데, 아이들에게 맞는 큐티를 따로할만한 능력이 없기에,
아이들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쉬운 것만하면 계속 똑같은 것만 하게된다”며 밀어부치고 있는데,
국민학교 5학년 짜리 아들은 하품을 연거푸하며 한숨을 푹푹내쉼니다.
요즘 뭘 좀 안다고 생각하는 중2짜리 딸은 질문에 대답은 안하고 말대꾸는 꼬박꼬박합니다.
아내는 아이들 손톱물어뜯지말라, 냄새나는 발 만지지 말라, 자세 똑바로 하라고하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만, 아이들의 약한 집중력이 다시 또 흐트러지니,
나도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바울사도는 마음을 활짝열고 입을 열어 마음껏 그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고린도교인들에 대한 바울사도의 사랑이 작아진 것이 아니고,
고린도교인들의 바울사도에 대한 사랑이 작아진 것이라고…
자녀에게 말하듯,
사도바울의 그 넒은 사랑의 마음에 응하여 그들의 마음도 크게 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일히 설명을 해야 알겠느냐고
너희들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야단치고 꾸중한 것을
곡해하느냐는 듯이 그 중요성을 다시 말해주는 듯 합니다.
사도바울의 넓은 마음,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어찌 사도바울보다 어린 사람만 있겠으며,
지위가 낮은 사람만 있겠습니까마는,
바울은 그들을 대하여 자녀에게 말하듯이 합니다.
넉넉하고 넓은 마음과 사랑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감싸주며 같이 아파해주며 책임감을 가지고 대하는 태도가 아닙니까
내 자신이 아이들하고 큐티에 고전을 하고있다가 보니
바울사도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조그만 시냇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강으로 나가고 이제 조금있으면
바다로 나가서 믿지않는 친구들틈에서 더욱 많은 세상학문을 익힐터인데,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는 말씀을
오히려 꽁꽁막힌 그리스도의 좁은 마음으로나 곡해하지 않을지…
스스로 큐티하는 아이들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기위해서는 QT잘 하는 본을 보여야 하는데,
내 육신의 힘으로 하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수도 있기에,
오늘은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향했던 그 넓은 마음을 묵상합니다.
그 마음은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오래참으며,
심한고생으로 살소망까지 끊어지는 고통중에 자기를 의뢰하지않고,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육체의 지혜로 하지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며,
영광의 직분을 기억하며,
고난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가운데 생명으로 덧입고자하며,
자신을 위해 살지않고 자기를 살리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고 했던,
바울사도의 믿음의 삶의 결과가 아닙니까.
오늘은 감히 그 사도바울의 넓은 마음을 꿈꾸어 봅니다.
나를 백성삼아주시고 자녀삼아주시며 놀라운 영의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또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합니다.
육과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내 자신을 먼저 깨끗케 하지 않고는 큐티의 본을 보일수 없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