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번민합니다.
작성자명 [안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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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1.08
이사야서를 친정 조카가 유학 차 저희 집으로 오는 문제로 다 보내고 맞이한 고린도 후서....이 고린도 후서도 4절을 훌쩍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동안 집 정리도 다 끝났고, 아이들도 그런대로 새 학교에 적응되어 졌고,
이제 차로 5분 만 달리면 갈 수 있게 된 주님의 몸된 한 교회 안에서 온 가족이 한 마음으로 은혜받게 되기만을 사모하고 있던 차에 시작된 고린도 후서...
남편의 교회 적응 문제가 새롭게 돋아난 가시처럼 솟아 올라 고린도 후서의 말씀을 찔러옵니다.
그렇지만, 남편의 문제를 통해 하나님이 제게 주시려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않고 하루하루를 뭉개며 지나갔고,
결국 남편의 새로운 가시는 더이상 없는 것으로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려서 그런 남편의 교회를 향한 내적, 외적인 부적응 현상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 깊이......하나님의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터져 버린 남편의 문제(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려는 남편)를 대하는 저의 태도는 알고도 모르는 척과 남편의 생각을 덮어놓고 무조건 내리 누르려는 강포함으로 일관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내 마음 속에 성령님이 멈춰서 남편의 말에 귀를 기우려, 남편의 뜻을 우선은 받아주고 나머지는 내게 맡겨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도...선뜻 믿음으로 녜 라고 순종치 못하는 저입니다.
선선히 순종치 못하고 결국 막다른 곳에 이르렀는데도 고집스럽게 남편의 교회 출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고민과 번민속에 어제 오늘을 보냈습니다.
내 속에 커져만 가는 생각... 애써서 지금에 까지 왔는데 어찌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내 속에 커져만 가는 의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구태여 이곳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이유가 뭔가? 남편의 입을 통해 시인하게 하셨던 말들은 그럼 다 뭔가?
억울한 마음에 남편을 향해 굳은 얼굴을 이틀이 지난 오늘에도 풀지를 못하고, 진심에서 우러난 선선한 대화를 남편과 이루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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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이야기냐구요?
남편은 도무지 교회에 적응을 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믿음도 없이 교회에 출석하고 그 작은 교회에서 성도들과 서로 교제해야 하니 그런 남편의 어려움이 오죽할까!....싶었지만,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인도하신 바에야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으시겠지?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하시겠지?....그 믿음 하나 붙들고 알고도 모르는 척 남편과 계속 주일 성수를 해 왔었는데....
말씀의 은혜를 받긴커녕 갈수록 태산....어느날 부턴가는 가만히 듣는 척이라도 하던 찬송을 듣기만 해도 곁에서 어이없다는 듯 비웃고....
기도를 해도 눈을 뻐끔하게 뜨고 있고...사람들과 점점 말을 썩지도 않고,
사람들을 무시하는 듯한 그 태도....모르는 척 하려해도 교회 안에서 늘 가시방석에 앉은 듯 마음이 편치가 않았습니다.
그런 제 마음에 기름이라도 붇듯 친정어머니께서 자꾸 말씀해 오십니다.
애야....네 서방, 그렇게 나오기 싫어하면 그냥 놔 둬라. 이건 아닌 것 같다. 다른 분 뵙기도 넘 민만하고.....믿음이 그런다고 억지로 생기겠니? 더 역효과야.....
그래서 언제부턴가 날마다 하는 타령.... 나, 이제 교회 안나가면 안돼 ....하는 그 소리에 그래요. 좋은대로 해요 ......라고 대꾸했다가...
이번주 부턴 완전히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는 남편의 선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 제 입의 선선한 선언과는 다르게 남편의 그 말을 듣자마자 제 속에 숨어있던 날카로움이 찌를 구실을 발견한 칼처럼 벌떡 일어 났습니다.
지금 남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보듬는 <섬김>으로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외면하고, 즉각 남편의 말에 반기를 들며 있는 포달 없는 포달을 다 떨었습니다.
난 안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순 없어, 다시 돌아가라면 안해. 돌아가게 하실꺼면 여기까지 뭐하러 이사까지 오게 하셨어?
속상한 마음에 남편에게 당신 혼자 서울로 돌아가라! 고 억지를 쓰며 낯 빛을 바꾸며 심하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깊숙히 <순종치 않으려는 마음>이 저를 주관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그 마음이 주는 속박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번민합니다.///
내 속의 죽은 마음....남편에 대한 실망, 절망.... 하나님께 대한 의문, 항변....
하나님께 이런 나의 마음을 송두리채 드리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내 율법 지킴으로 쌓여진 썩어질 영광을 억지로 수건으로 덮어보는 수고를 해 보지만,
끝끝내 저의 수건 쓴 거짓 마음이 주께로 향하지 못했는지 남편을 향한 냉냉한 얼굴이 도무지 풀어질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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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음을 진정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겉사람이 후패하였으나 그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오히려 왕성해 짐으로 인하여 기뻐했던 바울선생님의 기쁨이 예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을 슬프게 해 드리는 것은 겉사람의 풍성을 위해 거짓 수건을 쓰고 겸손한 척, 믿음 좋은 척 하나 실은 그 속에 강포와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교만이 가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슬프게도 이것이 오늘의 저의 모습입니다.
들은 말씀이 있어 이 슬픔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고 스스로 겸손이라는 수건을 쓰고 회개하는 척을 해 보지만,
잠깐 빛을 되 찾는가 싶더니 곧 식어버려 삶에선 실질적인 돌이킴이 없는...남편 앞에서 변해버린 낯 색에 변화가 없는 나의 겸손과 회개는 거짓에 쌓인 회칠한 무덤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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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받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내 힘으로 돌려 놓을 수 없는 남편,
내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게 할 수 없는 남편,
그 남편으로 인하여 탄식하나,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속히 남편이라는 짐을 벗어 버리려 하는...
말씀으론 뻔이 알면서도 내 한계를 밀고 덤비는 눈 앞의 상황 앞에 속수무책...그렇게 밖에 반응 할 수 밖에 없는 이토록이나 이율배반적인 저 입니다.
이렇게 깨어지지 쉬운 연약한 육을 가진 존재이기에 반대로 작은 율법의 혹은 믿음의 행위 끝에 이룸에도 쉽게 스스로 의로워져서 깨어질 길을 가는지도 모르고 ....내 의기에 겨워 <내쳐 걷는 나>를 때를 따라 거두어 드리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낍니다.
내가 아니라.....내 율법의 행위가 구원을 이룸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내 육의 탄식 위에 무한히 부어주시는 예수 생명이 있기에 이루어 갈 수 있는 것...
후패하면 억울함에 오늘 이 순간에도 이제까지 걸어온 모든 것을 스스로 부수고, 스스로 사생결단 낼 수 있는 이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이기에... 더더욱 강하게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그 영원한 생명을 덧입기를 간구하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저 입니다.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 입니다.>
그 무한한 성령충만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율법의 끝을 <생명으로> <생명으로> 이어가시는...율법의 마침표가 되시는 그 주님의 놀라운 은혜의 세계를 다시금 발견하며, 다시금 그 큰 은혜를 덧입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뻔이 알면서도 내 속에 사망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번민하는 이 어리석음을 봅니다.
주 안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율법의 수건을 벗고 주의 품으로 돌아가 안기어 무한히 덧입혀 주시는 그 생명 안에 안온히 거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