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논리 참으로 타당하네요.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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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1.08
2005/11/08(화)
고후5:11-21
예수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죽었습니다(5:14-15).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본질상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5:14).
과연 사도바울의 논리가 타당합니다.
예수가 모든 사람 즉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던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예수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5:21)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닙니다. 예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한답니까?
우리의 사는 최고최대의 목적은 무엇이어야합니까?
물을 볼 필요조차 없는 질문입니다.
다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되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5:15)
오, 예수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옵니다.
오, 예수의 사랑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을 세상적인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신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먼저 믿은 우리는/ 나는 그분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랍니다.
그래서인지 날마다 우리를 성령안에서 새롭게 창조해나가시고 빚어나가시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봅니다. 어제도 성령으로 역사하신 주님
저를 새롭게 빚어주신 주님 주님의 새롭게 하심을 찬양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를/나를 빚으시고 새롭게 해 주시는 이유는
세상사람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자랑이 되게 하시고자 함이 아닙니까?
이 아침 저의 가슴을 파고 들어오는 한 가지는
내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자랑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5:12)
그간 그렇게 살지를 못했습니다.
내 자신을 드러내보이고 다른 이들의 겉모습만 #55005;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진정한 복음의 대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저들이 아직 예수가 자신을 위해 죽은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이 종이 대사직을 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대사는 종이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종이어야하는데
자꾸 문특을 높이는 대사, 무엇인가 되는 냥 하는 대사
그런 대사를 버리고 종으로서 대사/낮아지는 대사/사람들의 마음안으로 들어가는 대사
되어야한다고 합니다.
다시 깨달음을 주신 하나님을 이 아침 찬양드리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