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태복음 21장 1-11절을 보며, 원트와 니드를 묵상한다.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무리들이 겉옷을 길에 펴며,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기도 하면서 환영했다.
호산나를 외치며 다윗의 자손을 찬양했다.

- 틔움, 사진 : 원강 님 -
그들은 그랬다.
겉보기엔 예수님을 구주로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는 것 같았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우린 안다.
그건 그들의 원트였음을,
겉으로 드러난 바램, 원트였음을 말이다.
그들의 진정한 욕구, 니드는 달랐다.
니드는 자기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는 해방자로 생각하고 열렬히 환영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니드를 아셨다.
그래서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으셨다.
당신을 구주로 왕으로, 주인으로 모시는게 아니라,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해방자로 생각하는 그들의 속내를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잖아 자기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함을 알았을 때,
나뭇가지 대신에 돌멩이를 들고,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박아죽일 것 또한 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체 응답하지 않으셨다.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그들의 열렬한 환호에 한마디라도 응답하셨다는 말씀이 없다.
예수님은 그러셨다.
그렇게 영안이 밝으셨다.
겉모습만 보고 들뜨는 우리네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시다.
속내를, 진정한 욕구 니드를 뚫어보는 혜안이 있으신 분이셨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예수님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겉모습만 보고, 겉소리만 듣고 판단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예수님처럼,
사람의 속내, 깊은 마음속 니드, 그 진정한 욕구를 캐취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또 아버지를 불러보는 수욜의 포근한 초봄의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