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어려워도 낙심치 않는 이유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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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1.07
고후 4 : 16 ~ 5 : 10
고후 4 :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치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사람이 행동하는것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먼저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만 먹어도 똑같이 인정해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과 행동과 결과가 같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느 경우든지 그 중심을 보십니다.
아브라함이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할때 축복의 말씀을
주셨는데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때에야 하나님을 경외 하는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전에 이미 여호와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독자라도 드린다는 행위로 입증이 된것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이삭은 실제로 죽이지 않고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조상이 됐습니다
그 세월동안 아브라함에게 우여곡절이 많았고 기근으로 애굽으로 도망가서 아내를 팔아
버리는 불신앙과 비겁함까지 보여서 남자망신의 심볼까지 되었지만
결국은 긴 세월동안 믿음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어서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핍박자로 스데반을 죽였던 사람인데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3 년을 수련을 받은후에 복음의 현장에서 사도로 쓰임 받았는데
그것도 바울이 이미 유대교에서 율례와 법도와 성경을 배워온 가멜리아 지파의 유수한
엘리트였기 때문에 가능한것 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를때 핍박자였던 바울이 변해서 예수를 아는것외에는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여긴다는 고백은 참으로 귀합니다.
거기까지 오기까지 소시적부터 시작된 적지 않는 긴세월을 영적전투를 통해서 나온 고백
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바울과는 비교가 안되겠지만 일반 성도들에게도 적지않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통과해야 부활의 영광을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초대교회 이후에 세워진 모든 교부들이나 속교부들도 고난의 흔적위에 세워졌을때
그 영적 권위를 인정 받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100% 죄인이라 아무도 죄를 피 할 수가 없습니다.
흑암같은 죄의 자리에서 깊은 좌절을 맛 볼때 깊은 은혜를 체험할수 있습니다.
바리새인 보다 세리와 창기의 손을 들어 주셨던 예수님을 볼때 나는 소망이 있습니다.
내가 수많은 실패의 자리에서도 나의 죄가 보여서 애통할 수가 있다면 축복입니다.
오늘의 말씀 가운데서도 나의 죄가 보이면 나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죄는 믿는자에게
회개를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회개를 가장 기뻐 하십니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살았던 에덴에서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주님과 분리 되었기 때문
입니다. 회개는 주님과의 일치를 뜻하기에 귀한것입니다
회개를 통해야만이 영원한 세계의 문이 열립니다.
보이는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것은 영원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바라볼수 있다면 나의 후패한 이 장막집이 먼지처럼 흩어져 버리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는것은 당연한것입니다.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영겁의 세월에 비해 한 경점같고 인생의 전부를 보아도 안개와
같기 때문입니다.
중국집에 들어가서 짜장면을 먹든지 탕수육을 먹든지 나가면서 계산대 앞에 서야하듯이
나의 삶이 끝나는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나의 행동은 물론이요 생각까지 드러나
각각 몸으로 행한대로 판단을 받을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낙심치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언약의 일꾼이 되어서
고귀한 성도의 직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할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이
초라한 나사렛의 촌부 선생님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어지기 때문에 내가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나의 인생의 남은때를 살면서 내가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해서
민족과 열방을 안고 그들의 영혼이 윤택해지는 소망과 함께 기뻐 합니다.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는 낙심할 이유가 없는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