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함을 얻으려면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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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11.06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믿는 맘으로 주께 가오니 나를 영접하소서.
내가 매일 시자가 앞에 더 가까이 가오니 구세주의 흘린 보배 피로써 나를 정케하소 서 ♪
거룩한 성일 우중에도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시기를 기도합니다.
방 안에서 자는데 어떻게 밖에 비가 오는지 잘 알고 새벽기도회에 안 오는 사람도 신령한(?) 사람입니다.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찔러보면 압니다.
그 사람에게 안 믿는 사람을 붙여보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면 신령한 사람이 되고 교회에 나왔던 사람도 나오지 않게나. 더 나쁜 모습으로 변화되면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 오래 다녔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닮아 가면 그 사람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내 가정, 직장 등 주변에서 나로 말미암아 예수 믿는 사람이 생기지 않으면 주님을 믿는 나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이삭이 그랄땅으로 가서 우물을 파자 블레셋왕 아비멜렉의 부하인 그랄 목자들이 우물을 파지 못하도록 계속 다툼으로 여러 곳에서 마지막으로 우물을 판 곳이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다는 르호봇입니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창26:28)
나중에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와서 한 말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은 갈라디아서 5장 16~26절로 성령충만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렵니다.
내일부터 2주일 동안은 특별강사를 초정하여 교회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 마귀론 등에 대하여 주제별로 공부하고자 합니다.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모두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또한 불신자들이 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선하게 산다고 하여도 그들은 지옥백성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지배, 통치, 다스림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충만한 모습은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22~23)
방언, 치유의 능력 등 성령의 은사는 받았으나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문제가 잇습니다.
성령충만한 모습은 인격으로 나타납니다.
성령충만함을 얻으려면
① 성령님께 순종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6)
성령께서 나에게 감동을 일으킬 때 순종함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머무르고 있을 때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광야로 갔다가 이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간다게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나도 극동방송을 많이 청취하지만) 극동방송의 주파수는 106.9입니다.
우리도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면 영적인 안테나 즉 영적인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내 이성, 지식, 경험,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인간의 본성이 부패(죄중에 출생, 성장)하였기 때문입니다.
③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 공짜로 주는 것입니다.
나는 고씨집 가문의 아들로 자연스럽게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가문에 먹칠을 하지 않으려면 가훈을 잘 새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측량 못할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자녀답게,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 위하여 내 자신의 노력, 시간, 물질, 재능에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교회 왔다 갔다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만합니다.
④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25)
순종하라는 말과 비슷한 말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 음속에 감동을 준대로 행하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과 옛성품으로 우리들의 마음속에 선과 악 공존합니다.
진리는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동일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남의 탓을 하거나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해 나가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을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고등학교 시험을 보고 떨어졌을 때 아버지가 가정예배 보자고 하였습니다.
우리 가정은 아침, 저녁에 가정예배를 보았는데 어머니가 찬송을 두곡 고르고 아버지는 말씀이 길었습니다.
우리가족은 주일날도 가정예배를 봄으로 예배 중독증 환자였습니다.(^!^)
방성통곡을 하였더니 합격되고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떨어진 것도 감사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라고 다음 주일 날 아버지께서 감사헌금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별로 몰랐는데 지금은 나의 부모님이 너무나 좋습니다.
시궁창에 빠져서 기뻐하고 있는(?)을 제자들이 왜 웃느냐고 묻자 두발 안 빠진 것에 감사하다고 말을 하였답니다.
긍정적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이 성령의 반응입니다.
성령께 순종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음으로 성령충만한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11월중 우중인데도 불구하고 첫째 주일 새벽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에게 인격적인 변화가 있어 성령충만한 모습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화목한 인간관계, 언어의 변화, 영적전투의 승리, 하나님이 하신 큰일을 증거, 꿈과 비전을 가짐으로 성령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기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시는 주님! 오늘도 가늘고 세미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