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고후2:12-3:5구원론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루터의“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i)은 당시의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실천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재편하도록 요구했고, 가톨릭교회는 그것을 거부하고 루터를 파문시켰습니다.
이로써 개신교회가 시작이 되었으니 결국, 신구교의 나뉨은 구원론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저번 주에도 명동에 나갔다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을 알리는 대자보를 보았는데
만약 많은 성도들이 구원을“천당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죽은 후에야 유효하다는 뜻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에 있어서 현재적 의미를 더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원을 한번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대신 말씀
하였는데 그때도 천국을 미래의 장소적 개념이 아닌 통치적 개념으로 벌써 천국이
임하였음을 선포하셨답니다.
또한 20세기의 많은 신학자들이 십자가 보다 부활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교회는 대속적 죽음에 대해 너무나도 편만해 있기 때문에, 이 구원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반드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비록 미래에 완성될 것이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부활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성도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받아드리는 순간부터 시작된 부활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신분으로 살게 하는 분수령이 된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최근에 읽은 논문에서는 성도의 삶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성령의 현존을 믿고, 그의 인도하심에 인생을 맡기는 것이고 이것을 믿음이라고
설명합디다.(예수의 성령론적 구원론/김영봉/협성대, 신약신학)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를 죄 있는 상태로 그대로 두시고 과거의 죄만 용서하시는 것은 사랑도 공의도 아니란 것을,
강조점은 내가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어그러진 과거를 청산하는 것은
물론, 새 백성으로 거듭나는 데에 있습니다.
성도가 되었으면 변화 돼서 구별 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활이 내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사는 것을 가능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벌써부터 와 있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부활한 백성들
만이 가능한 일인데 그것은 내가 날마다 내 왕의 통치를 받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답니다.
구원 받으셨습니까?
복음의 문을 열게도 닫게도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들의 여정을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내안의 자아와 싸울 때 번번이 실패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내안에 그리스도가 승리케 하신 것을 인하여 찬양을 드립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동역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인생을 인도하셔서 제가 이웃에게 좋은 냄새를 풍기게 하시고
예수님 한 분 만 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005.11.4/ 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