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을 신고 내어 딛는 첫 발걸음
작성자명 [진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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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2.15
어제 설날 예배를 다녀 오는길에 차가 많아 길이 많이 막히더군요.
찬양도 불렀다가.. 남편에게 애교도 피웠다가..
슬쩍 오늘 말씀가지고 나눔으로 끌어들여도 봤다가...
그러면서 오고 있는데..큰 언니가 웬일로 전화를 했더군요.
그렇잖아도 올 설에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그냥 전화로 때워버릴까? 그러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내심 기다린것 같은 눈치가 보이면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는것이 있었습니다.
작은언니가 시댁에 다녀온다고 내일 오라하여 약속해둔 터라
얼떨결에 내일 가겠다고 대답을 해놓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속은 부글거리고 기분은 착 가라앉는 것입니다.
남편과 축구를 보고 일찌감치 잠이 들었고..
오늘 새벽 여전한 방식으로 목사님 설교를 듣고 큐티를 하려는데..
무엇인지가 어렴풋이 보이는것입니다.
29년전 고2때 예수님을 영접한후
젤 먼저 시골에 계신 엄마를 전도했었고..
평생 섬기던 산신령을 버리고 교회당에 1년 넘게 다녔을즈음
그야말로 마귀역사라는것을 하셔서 기도원에 입원을 시켰었고...
입원 15일동안 식음을 전폐하여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엄마 장례식에서 큰 언니는
너 때문에 엄마 돌아가셨다며 쌍소리와 함께 뺨을 때렸습니다.
밖으로 나온 저는 저 높은곳을 향하여 찬송으로 주님만 불렀습니다.
부흥회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두 언니의 영혼이 너무 불쌍하여
두 언니를 구원해주실때까지 금식하겠다며..
떼부리는기도를 일주일 하다가 스스로 접었었던 기억도 있지만..
언니들 구원을 향한 애통 절통은 그 후로도 계속 되었습니다.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찬송을 부르며 오늘은 에수님 얘기를 꼭 하고 오리라 갔다가..
돌아 올때는 처참한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곤 했던 기억이납니다.
언니나 형부가 대 놓고 무시하며 비방하는것은 그래도 참겠는데..
어린 조카들이 엄마 아빠가 하는것을 보고
너무나 대 놓고 이모를 무시할땐 정말 상처가 되었습니다.
말씀도 없고 훈련받은 지혜도 없이 그저 사모하는 맘만 가지고 덤볐다가
그렇게 좋은 하나님이 네게 해준것이 무엇인지 말해보라며
제게 표적을 구할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보여주긴 해야겠는데..
어찌해야 하는지를 도무지 몰라 했습니다.
돌아와 구하는것이 결국 표적을 보여달라고 떼를 쓰는것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짠 하고 보일만한것이 없어 그토록 사랑하는 두 언니 가정구원을 체념할즈음..
이별과 사별로 두번씩이나 결혼을 실패하고 알콜 중독이되어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가 않는다며
늦은 밤 내가 기도하고 있던 교회로 찾아온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주님을 사랑해서라는 명분으로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을 했습니다.
너무나 불쌍한 이 사람 내가 아니면 누가 거두어 줄것인지..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심정으로...(지금보면 어이가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언니들의 가슴에 못질을 하고 시집을 왔습니다.
언니들이 거절한 복음 시댁에다 전할거야..
언니들 지옥에 가도 난 몰라..
지옥가서 나 한테 원망 하지마~
그렇게 손을 털어도 봤습니다.
시댁에선 처음에 구세주가 나타났다며 좋아라 하셨지만..
것두 잠시...
남편의 중독은 점저 더 심해져갔습니다.
분별도 준비도 전혀없이 맞섰던 나는
번번히 상상을 초월하는 남편의 주사에 다시금 패대기쳐졌습니다.
아뿔싸 안되겠구나 싶어 돌아가고 싶었지만
피해 갈 친정도 없었고..
아이 데리고 독립할 경제력도 없었고..
그야말로 줏어먹은 말씀은 있어
내가 피하면 자녀들에게 저주가 물려진다는 두려움에
꼼짝없이 당하기를 만 10년 만에
기적같이 남편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술을 끊고 변화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자훈련을 하던 교회에서 말씀으로 양육을 받았고
구원의 확신과 사명을 깨달아
평신도 사역자로 전도하고 양육하는 모습이
제가 보기에는 대단해 보였습니다.
세상말을 할때는 어둔한데..
말씀만 들고 서면 어떻게 그렇게 확신이 넘치는지..
양육받은 사람들이 세워지곤 하였습니다.
세상을 다 얻은것 같아 침이 마르도록 언니들에게 간증도 하고
보여도 주었지만...
다행이네~그래도 네가 착하게 살았으니 당연한거 아니겠어?
그러고는 예수님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겁니다.
나야 기적이라고 좋아하지만...
언니들이 구하는표적에는 손톱만큼도 미치지 못햇던 것이지요.
여전히 울 가정은 가난했고
언니들이 원하는 사람도리엔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연년생인 두 언니는 서로 경쟁이 심하여 아웅다웅 하다가도
예수믿는 나를 핍박하는일엔 금새 하나가 되곤 했구요.
지금까지 가장 가슴 아픈것은...
며느리를 보고 사위를 볼때면 주일에 예식을 합니다.
예배시간에 겹쳐 못가게 되므로
전날 가서 나름 성의를 표시하고 축하해주고 오는 적용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믿고 가난한 이모를 창피하게 여겨
집들이에도 안 불러 아직 언니의 사위를 대면해본적이 없다는것입니다.
해도 너무하지 않느냐며 지난 추석엔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더랬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먼저 전화를 한것 같습니다.
전화를 받고보니 서러움이 더 올라와
어제는 그렇게 기분이 가라앉았던것 같습니다.
어제 주일말씀과 더불어 오늘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가 아주 조금 보입니다.
어찌하여 여전히 시댁도 친정도 이렇게 구원이 더디되는지 말입니다.
남편의 변화를 통해 시어머니는 떠났던 하나님께 돌아와
현재 명예권사님이시지만 주일만 지키시는 정도이십니다.
부산에 사는 시동생과 동서는 부부집사이며 성가대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충주에 사는 시누이는 두 언니와 같이 불교신자입니다.
그래서 세 가정이 구원을 받길 간절히 사모했는데...
기도도 하고 말씀도 전하던 도중..
지난 해 울 가정은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사건들로 왕창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나마 기적으로 되었다했던것들조차 더 흉악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무너진 내 모습 이대로를 인정할수가 없었고
이 모든일이 시어머니때문이라며 원망을 하다가
시누이 시동생과 왕래도 끊겨 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언니네인들가고 싶겠는지요.
어쩌다가 이렇게 될수밖에 없었는지..
말씀을 묵상하며 묻자와 가로되를 하는데..
구원의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있음이 분명하지만..
전하는자가 썩다 만 밀알이었음이 보여졌습니다.
내 안에 덩어리진 누룩을 제거하지 못했음도 보였습니다.
내 죄를 보고 회개하여 눈이 밝아졌으면
저들의 누룩도 보여 잘 주의하며 갔을텐데..
늘 저들의 표적에 기준을 두고 전했으니
이기려고 다투는 전도에 불과했던것입니다.
무너짐을 통해 영원한 심판에서 다시한번 기회를 얻었고
날마다 말씀으로 죄를 보고 회개하며 내 사건들이 해석되어가는가운데
오늘은 가족들의 구원향한 발걸음에도
새신을 신겨 주시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나의 표적을 보이면서 가는것이라 하십니다.
오늘도 썩고자 인사를 가야할것인데
이모로 대접받으려 인사를 가려했었음을 회개합니다.
울 집 넓혀 이사를해도 한번도 안왔다고 계산했었음을 회개합니다.
구원을 위해서라는 목적을 번번히 잊고
상처받고 당했다고 서러워했던 내 죄를 회개합니다.
잘 당하러 가겠습니다.
내게 주신 품삯임을 감사함으로 받으러 가겠습니다.
행여 언니대에 안믿더라도..
조카들 대에라도 믿기를 바라며
이제부터라도 썩어지는 밀알로 심기러 가겠습니다.
참으로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닫게 됨을 감사하며
새 신 신고 가려하는데
창자가 끊어질듯한 애통이 자꾸 올라와 눈물만납니다.
예수님모시고 진장규 진규봉 진규연 세자매가 함께앉아
만찬 한번 해봤으면하는 소원이 자꾸 솟구쳐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