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
◈ 매일큐티 3월 16일 목요일 ◈
◉ 율법의 완성 ( 마태복음 22:34-46 )
▷ 바리새인들의 시험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 중요한 두 계명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성령에 감동된 다윗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노트 ▣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 큐티인 )) 말씀은 마태복음 22장 34절에서 46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에 감동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성령에 감동하는 삶은
◉ 첫째,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오늘 34절에 ampldquo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amprdquo라고 해요. 어제 부활이 없다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주님은 ampldquo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 amprdquo고 답하셨지요. 그런데 이 논쟁으로 사두개인들의 견해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자 그들과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바리새인들이 통쾌하게 여겼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예수께 더 나은 질문을 하겠다고 모인 것입니다. 35절과 36절에 보니 ampldquo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amprdquo라고 해요. 그는 들으려고 물은 것이 아니라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돈 많고 기득권층인 사두개인에 비하면 바리새인은 가난해도 배운 게 많았지요. 바리새인들은 당시 모세오경의 계명과 더불어 관습으로 수용된 법까지 다 합쳐서 613가지를 정했습니다. 율법사들은 그 중에서도 더 중요한 것 288가지와 덜 중요한 것 365가지를 나누어 백성이 법을 지키게 했지요. 그런데 오늘 이 율법사가 가령 어떤 계명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면 왜 그런 것인지 예수께 물은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그가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고 하지만 팩트는 그가 주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는 점입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특징이 들을 태도가 안 되있으면서 자꾸 묻는다는 것이에요. 정작 하나님과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으면서 교묘하게 성경을 들먹이면서까지 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지요.
▶ 여러분은 어떠세요?
◎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정작 관심도 없으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자꾸 묻고 있지는 않습니까?
▶▶ 성령에 감동하는 삶은
◉ 둘째, 하나님으로 인해 진짜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37절부터 40절에 ampldquo 예수께서 이르시되 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amprdquo고 하십니다. 여러분 율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웃에 대한 태도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amprsquo는 첫째 계명의 외적인 표현이 이웃을 사랑하라 amprsquo인 것이죠. 그런데 율법사가 개떡같이 질문했어도 주님이 찰떡같이 대답해 주셨네요. 어떤 질문을 받든 우리도 예수님처럼 지혜롭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이 질문 덕분에 주님이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결론은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지요.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심정이 통하는 것이고 그러면 자기 목숨도 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겠지요.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살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이 지금 어떤지 주께 목숨을 내놓았는지 하나님 뜻대로 살고 있는지 THINK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 율법의 완성이 ( 사랑 )입니다. 사랑은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조차 하나님이 해주셔야지 내 힘으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하나님 없이는 절대 불가한 것입니다.
▶ 적용질문이에요.
◎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면 나를 먼저 돌아봅니까? 아니면 말씀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기에 바쁩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사랑을 경험하셨습니까?
[ 묵상간증 ]
▷▷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질병 고난을 통해 자기 열심을 내려놓고 주의 사랑에 사로잡혀가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 큐티인 )) 묵상간증이에요. ( 그냥 많이 웃으세요 )
모태신앙인인 저는 늘 내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30대에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즘 진단을 받았지요. 처음엔 젊은 나이에 이런 일이 오니 믿기지 않았어요. 또 나를 괴롭게 하는 가족들 때문에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서러웠답니다. 그래서 오늘 34절에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물은 율법사처럼 그동안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요? amprsquo물으며 하나님을 원망했지요. 그런데도 주님은 이런 저를 포기하지 않고 공동체 지체들의 간증과 자녀의 질병 경제적 기근으로 끊임없이 찾아와 주셨어요. 고난 가운데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게 되니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내 열심의 죄를 회개할 수 있었답니다. 저는 여전히 자가면역질환 환자에요. 그런데 이르케 병에 걸려 제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니 바리새인같던 저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며 함께 울어줄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르케 믿음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게 하시니 감사드려요. 날마다 바리새인 같은 제 모습을 회개하며 내 노력이 아닌 주의 사랑에 사로잡혀 지체들과 함께 울고 웃는 인생이 되길 소망해요.
▷ 저의 적용은, 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지체에게 제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환자의 경계를 지켜 식이 조절을 하고 약을 잘 복용하겠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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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절 이하를 보면 ampldquo 주님이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모두 답하시고 그들에게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트게 생각하느냐 amprdquo고 물으세요. ampldquo 이에 그들이 다윗에게서 구세주가 오신다 amprdquo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시편 110편 1절을 근거로 ampldquo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자신의 육적 후사인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다 amprdquo고 말씀하세요. 다윗이 성령에 감동해서 이 시편을 쓴 것임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윗이 썼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쓴 것이니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하는데 이게 다윗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인가? amprsquo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45절과 46절에서 주님이 ampldquo 어트게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주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 amprdquo고 다시 물으니까 ampldquo 그들 중에 한마디로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amprdquo고 해요. 아무리 대단한 학자라도 성령의 감동이 없으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세주가 와서 로마의 압제에서 백성을 해방시켜주길 간절히 바랐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왕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의 논리와 이성으로는 이 말씀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다윗도 고난 끝에 십자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해서 이르케 고백하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는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결코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체이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진 분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이 사실이 믿어집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슬픈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하면 즐겁게 듣지요. 하지만 갖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온다고 하면 슬프게 듣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해 능히 대답하지 못하고 감히 묻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 성령의 감동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내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참으로 성령에 감동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예수님과 겨루려는 교만이 있어서 주님을 시험하고 성령보다 지식에 돈에 인간적인 사랑에 너무나 쉽게 감동하는 저희들이에요.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할아버지가 손자를 보고 주라고 하는 것이 어트게 인간의 생각으로 믿어지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며 동시에 인간이심이 믿어질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내 삶에 자리에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성령 충만하여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특별히 투병 중인 지체들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주의 사랑에 사로잡혀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길로 놓고 걸어갈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해 주시옵소서. 병 낫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주여 그래서 주의 사랑을 보이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영육 간에 치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