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하기 ]
내가 돕고 살펴야할 연약한 지체는 누구인가?
[ 묵상하기 ]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눈 먼자 저는 자들까지도 고쳐주시어 성전에 거할 수 있게 해주신다. 도리어 나는 다른 사람이 성전에 올 수 있는 길을 잘 터주는 자인지, 아님 막고 있는 자인지가 궁금했다. 요즘 아빠는 코로나에 걸리시기 전 부터 술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시고 코로나로 인해 무기력까지 더해지시니 외로운 일상을 보내고 계신다. 그러니 내게 별 말 없이 그냥 목소리 들으려 전화했다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또 여동생은 직업학교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매일 힘들다고 일주일만 버티고 나올거라며 단톡방에 하소연을 하고 내게 전화가와서 이런 말 저런 말 하며 전화를 안끊으려고 시간을 질질 끌었다. 여동생도 아빠도 마음이 외롭고 무언가에 기대고 구하고 싶은데 무화가 나무에는 열매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열매를 찾아도 이들에겐 계속 허기로 느껴지고 무성한 숲 속에서 갇힌듯이 살아가고 있는거 같다. 이러한 가족들을 나는 전화 받기가 귀찮아서 친구랑 있다, 일하고 있다며 전화를 살갑게 받아주지 않았다. 아빠와 여동생이 구하고 원하는 것은 사랑의 언어 딱 그 한 마디인데 그 한마디 하는게 왜이리도 어려운지 오늘 열매 없는 나의 가족들에게 그 사랑의 한 마디를 건내는게 나의 적용임을 느낀다. 주님이 단 한명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두 예배의 자리에 거하게 해주신 것 처럼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배척하고 나누는 교만한 악행은 덮어두고 연약한 지체들까지도 품을 줄 아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 적용하기 ]
아빠와 여동생에게 오늘 안부 전화나카톡을 하겠습니다.
[ 기도하기 ]
주님 아직까지 너무 죄인이라서 연약한 자들을 품을 넓은 품이 없습니다. 늘 저의 죄를 보게 하시고 여동생과 아빠를 무시했던 저의 악행을 덮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