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
◈ 매일큐티 2월 20일 월요일 ◈
◉ 산을 옮기는 믿음 ( 마태복음 17:14-27 )
▷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1. (없음)
▷ 고난과 부활 예고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 성전세를 내심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노트 ▣
날마다 살아나는 큐티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 큐티인 )) 말씀은 마태복음 17장 14절에서 27절까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산을 옮기는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산을 옮기는 믿음은
◉ 첫째,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입니다.
오늘 14절과 15절에 ampldquo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amprdquo고 합니다. 그런데 16절에 보니 ampldquo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amprdquo라고 해요. 왜 그렇습니까? 제자들은 그 일이 자기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있을 때는 그르치 않았는데 예수님이 변화산에 가고 안 계시니깐 믿음의 현주소가 딱 드러난 것이죠. 그래서 17절에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ampldquo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amprdquo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없고 패역하기에 간질로 고생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원어를 보면 그들이 계속하여 불신앙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어요. 18절에 ampldquo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amprdquo고 해요. 귀신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라 꾸짖음의 대상입니다. 제 남편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의처증 기질이 다분히 있었죠. 정말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온종일 전화를 걸어서 제가 집에 있는지 확인했어요. 그런데 제가 말씀으로 양육이 안 되어 있을 때는 이런 남편이 그저 무섭기만 했습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면서 그 영혼을 꾸짖어야 하는데 무서워하니 남편 눈에도 그런 게 보였겠지요. 그런데 제가 날마다 큐티하며 예수께 구하다 보니 정작 달라져야 할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저 자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아버지는 예수께 자기 아들이 미쳐서 심히 고생하고 있다고 하기 힘든 이야기를 오픈했어요. 이것이 자기 부인이고 주님을 시인한 것이지요. 그럴 때 그 속에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꺼꾸러집니다. 그래도 19절에 보니 ampldquo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amprdquo하며 조용히 예수께 여쭙니다. 자기들도 챙피했겠지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비하면 제자들의 이런 점은 높이 살만 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은 20절에 ampldquo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amprdquo고 대답하세요. 그래도 믿음이 없다고 하진 않고 작다고 하시네요.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할까요? 20절 후반에 보니 ampldquo 산을 옮기는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이라 amprdquo고 하십니다. 겨자씨와 산은 비교대상이 아니지요. 하지만 겨자씨가 너무 작고 형편없어도 죽어지면 거기에서 생명이 피어납니다. 그래서 겨자씨만한 믿음은 생명력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 적용질문이에요.
◎ 나의 믿음 없음과 패역함이 드러난 적은 언제입니까? 오늘 내가 가정과 일터에서 죽어지고 썩어짐으로 보여야 할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 산을 옮기는 믿음은
◉ 둘째, 십자가를 길로 놓는 것입니다.
22절과 23절에 ampldquo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amprdquo고 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잘 죽어지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지난 16장에 이어 오늘 본문에서도 주님이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합니다. 부활은 믿어지지 않고 죽는 건 너무 싫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귀신 쫓는 권능을 이미 주셨을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에 보면 그들이 직접 병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적만 좋아하기에 마지막에 갈 길이 십자가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죠. 베드로도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16장 22절에서 ampldquo 주여 그리마옵소서 amprdquo하며 주님을 붙들고 항변했지요. 이르케 베드로도 제자들도 예수님을 의심하여 근심하는데 그들에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의심이 없어야 능력 있는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 믿음은 학벌과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요한 1서 3장 16절에 보면 ampldquo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amprdquo고 해요. 그렇습니다. 이 믿음만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처럼 잘 죽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 여러분 어떠세요?
◎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제자들과 같이 근심하고 있지는 않으세요? 여러분에게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잘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 묵상간증 ]
▷▷ 사소한 일이라도 나를 살린 공동체에 묻고 나누면서 자기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겠다는 한 성도님의 (( 큐티인 )) 묵상간증이에요. ( 나를 살린 공동체 )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어요. 하지만 믿음 따로 삶 따로의 신앙이었죠. 그러다 내 계획과 열심으로 일군 사업이 부도를 맞았답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저는 큐티하는 공동체로 인도되어 구속사의 말씀을 듣고 부도 고난이 해석되는 은혜를 누렸어요. 그런데 한 번은 공동체 모임에서 지금은 낮고 험한 일이라도 수입이 있는 일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겠다 amprsquo는 권면을 들었어요. 그러나 저는 속히 사업을 일으켜 예전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욕심으로 그 권면을 무시했지요. 그리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답니다. 이 후 교회 소그룹 리더로 부르심을 받은 저는 저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지체를 만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전에 제가 공동체에서 들었던 권면을 그에게 했지요. 그러면서 먼저 저부터 순종하는 마음으로 야간에 지하철 승강장을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답니다. 이르케 구원을 위해 적용하니 비록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기뻤지요. 무엇보다 오늘 23절 말씀처럼 일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과 체면, 자존심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구속사의 말씀으로 살아나는 부활을 경험하게 되었답니다. 공동체의 권면으로 내가 죽고 예수님이 제 안에 역사하셔서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니 감사해요. 앞으로 사소한 일이라도 공동체에 묻고 나누면서 제 십자가를 끝까지 잘 지고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저의 적용은, 매주 아버지를 뵐 때마다 그날 큐티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믿지 않는 동생들의 구원을 위해 애통함으로 수요일마다 기도하겠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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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태산같이 높을 산을 겨자씨가 어트게 옮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그럴 수 있다고 하세요. 이 산을 옮기려면 대단한 기도와 금식이 아니라 사소해 보여도 구체적인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24절 이하를 보니 먼저 성전세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성전세를 받는 이들이 베드로에게 ampldquo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amprdquo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25절에 ampldquo 그래 내신다 왜 amprdquo이르케 답하고 집으로 와요. 그러자 주님이 ampldquo 베드로야 니가 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는데 주인이 아들에게 집세 받는 것 봤니? 그러니깐 전에 너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고백한 것이지 amprdquo라고 사랑으로 그를 양육해주십니다. 주님은 세금을 내지 않으셔도 되지만 27절에 보니 ampldquo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신다 amprdquo고 해요. 여기서 실족의 원어가 스캔들 ( Scandal ) amprsquo이에요. 구설수와 걸림돌이 되지 않고자 세금 내는 적용을 하신 거에요.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주님은 세상 법에 복종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amprsquo이 찬송가 가사처럼 우리 믿음의 여정은 단번에 가는 게 아니에요. 사소한 것이라도 날마다 믿음으로 하나씩 적용하며 갈 때 우리의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믿음이 큰 산을 옮기는 믿음이 될 줄 믿습니다.
기도드립니다.
주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최고의 영광을 보았지만 참으로 사역에만 관심이 있고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서 한 영혼을 고치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 땜에 십자가를 지시는데 저희들은 이 땅에서 조금이라도 무시 받는 걸 싫어하기에 한 영혼을 살릴 능력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꾸짖어야 할 귀신을 오히려 두려워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겨자씨가 작아도 거기에 생명이 있기에 큰 능력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저희도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 잘 죽어지고 썩어져서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를 길로 놓고 나아가며 사소한 것이라도 말씀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해 주시옵소서.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