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1. 수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 (마태복음 533~48)
우리는 죄와 허물로 얼룩진 인생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나와같이 온전함을 이루라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처럼 온전함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헛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헛맹세.. 지키지도 못할 맹세를 말합니다. 지킬 능력이 없거나 지키지도 않을 것이면서 맹세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헛맹세가 아니더라도 맹세를 도무지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네 이성으로도 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고, 땅은 하나님의 발등상이고, 예루살렘은 큰 임금의 성이며, 우리의 머리의 생각으로는 머리카락 한 올도 희고 검게 할수 없기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 천지는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맹세는 자신의 확신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힘과 권세, 능력을 빌려서 자기 확신으로 무엇인가 된양 으스대는 성격이 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겠습니까? 한낱 인간인 주제에. 하나님은 하늘이든, 땅이든, 구약의본거지인 예루살렘이든, 아니면 이성을 지닌 인간 자신이든 모든 것의 소유자되시고, 모든 우주만물을 움직이시고 다스리는 통치자이신데, 우리가 감히 그분의 이름으로 다른 이에게 맹세를 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자체가 아닐수 없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의심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옳다하든지 틀리다고 하든지 두가지 입장,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느냐 아니면 아니라아니라 하면서 거부하고 지옥행을 따르겠느냐 두가지선택 밖에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회색지대에 있겠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이는 악으로부터 나는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중간지대, 어영부영 대충대충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러니까 믿지 않는 것이고, 믿는다고 할때는 확실한 신앙고백으로 믿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처럼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이 되려면
둘째,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이 그당시의 법문헌입니다. 이는 과잉보복을 금하기 위한 법이었습니다. 나름 합리적인 법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법은 아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한대 맞으면 그대로 갚아주고 아니, 그 이상으로 복수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고 실제 우리가 그렇게 살때가 많습니다. 내 눈에 상해를 입히고 내 이빨을 부러뜨렸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내 아이에게 그런 상해를 입혔다면, 과연 대적하지 않고 내 자녀가 받은 만큼의 상해만 돌려주고 끝낼수 있을까요?
사실 요즘에 학교에서 학폭이 열리는 경우를 보면 자녀가 부당한 대우나 폭력을 당했다고 해서 열릴때, 자기 자녀가 당한 그 이상의 댓가를 요구해서 그것때문에 문제가 생겨 기도제목을 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상해가 내 문제나 내 자식의 문제가 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말씀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내어주고,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하거든 십 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으로 세상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우리들교회는 그런 적용을 하는 집사님들이 계셔서 오늘의 부흥이 이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적용한 그 한 사람이 다른 힘든 분들에게 왼편도 돌려대고 겉옷도 가지게 하는 적용이 있었기에, 많은 힘든 사람들이 와서 살아나고 다른 이들을 주님께 인도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징표, 표징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사실 더 나누고 더 베풀고 더 인내하며 다른 이들을 살리데에로 나아가는 것 밖에는 다른 방도가, 다른 비법이 없는것 같습니다. 그것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댓가를 바라지 않고 섬기라고 하시는데, 그런 분들을 세상이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저 예수님이 살아계시기는 한가보다 한번쯤이라도 생각하지 않을까요? 나도 저런 예수믿는 사람이라면 한번 교회에 나가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거 같습니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그러나 아무 경계없이 무조건 언제나 거절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 손해만 보라는 말도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다른 이를 섬기라는 뜻일까요? 그것은 상황과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그 적용이 다양할 것입니다. 영적인 능력도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능력도 인내도 안되는데 말씀에 의지한다고 해서 어리석은 적용을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우선은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고 상대를 분별해 내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은 셋째,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다라고 하십니다. 기독교는 정말 신을 믿는 종교가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원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앞에서 말한거처럼 오른편 뺨을 치는데 왼편을 돌려댈 수는 없습니다. 설령 한번 그렇게 했더라도 우리는 끝도없이 화가나고 생색이 날 것입니다. 아마 더 미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하기에 주님은 계속해서 설득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리 모두가 죄의 어떠함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해와 비를 받을 죄인입니다. 그것이 은혜받을 자의 자격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의 소낙비는 우리 모두에게 쏟아집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고 낙담하고 실망하여도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내가 불의한 자도 악인도 다 모두 사랑하시며 잘 살아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이 죄인이라고 해서 이방인이라고 해서 괄시하고 도외시한다면, 하늘의 상이 무엇이 있겠냐고 도전을 주십니다.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하십니다. 우리는 믿는자들이기에, 예수님께 복 받은 사람들이기에 너희 안 믿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전에, 내가 과연 그들보다 얼마나 무엇이 다른가부터 살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온전해 지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냥 인간적으로 온전해지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답게 너희도 온전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말씀처럼 되리라 응원해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계십니다.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리요, 그가 나를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며 내 자녀라 사랑해 주시고 기뻐해 주시는데, 그분처럼 우리가 원수도 사랑할 때 우리를 온전하다 해주시는 분인데, 우리가 말씀대로 따라가기를 주저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예수이름 붙들고 하루하루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대로 믿고 적용하다보면, 어느새 어느새 하나님 아버지처럼 온전함을 이루는 인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