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
◈ 매일큐티 12월 9일 금요일 ◈
◉ 항상 담대한 우리 ( 고리도후서 5:1-10 )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 덧입기를 사모하는 탄식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믿음의 담대함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노트 ▣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 큐티인 ))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10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두려움 많은 인생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심으로 항상 담대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항상 담대하려면
◉ 첫째,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 1절에 ampldquo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amprdquo고 합니다. 질그릇이 깨어져야 비로소 보배가 보이는 것처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도 무너져야 영원한 하늘의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진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영적원리입니다. 그런데 2절에 보니 ampldquo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amprdquo고 해요. 장막이 무너지는 것은 참으로 탄식할 일이지요. 우리가 육신이 아파도 집안이 망해도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그렇다고 가진 게 많으면 탄식이 없나요? 부하면 부한 대로 애통이 안 되기 때문에 또 탄식이 나옵니다. 이르케 탄식밖에 없으니 우리 인생이 하늘로부터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것이지요. 3절에 보니 ampldquo 이르케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amprdquo고 해요. 영원한 천국으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으면 벗은 자들로 발견되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망하고 무너지는 고난이 와도 그렇지요. 날마다 말씀으로 부활의 옷을 입게 되면 어떤 고난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됩니다. 또 4절에 ampldquo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amprdquo고 해요. 죽고 싶어 가는 천국이 아니라 정말 사모해서 가고 싶은 천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찾아오는 고난과 아픔을 사라지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예수의 생명으로 나를 덧입혀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르케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5절에 보니 ampldquo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amprdquo우리를 효과적으로 도우시는 성령님이 바로 부활의 보증이 되어주시기에 우리가 담대히 믿음으로 간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적용질문입니다.
◎ 여러분은 육이 무너짐으로 영이 세워지게 된 간증이 있으신가요? 요즘 무엇 때문에 탄식합니까? 탄식할 일을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보다 먼저 예수의 생명으로 나를 덧입혀달라고 기도해보시면 어떨까요?
▶▶ 항상 담대하려면
◉ 둘째,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보증이 되어주셔도 6절에 보니 ampldquo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amprdquo라고 합니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사는 한 그리스도와 따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가 항상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절에 보니 ampldquo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amprdquo 고 합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우리의 보증되시는 성령님과 동행함으로써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도 ampldquo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amprdquo고 했지요. 즉 우리가 영원한 처소에 대한 믿음을 확신과 증거로 삼고 걸어가면 담대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 바울은 ampldquo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amprdquo고 해요. 여러분 주님을 사모하는 바울의 마음이 느껴지시나요? 바울이 사도의 직분을 수행하는 일은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었지요.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수 없이 매를 맞고 헐벗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어요. 바울이 이르케까지 주님을 사모한 것은 그만큼 고난이 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정말 바울은 이 세상에 미련이 없었어요. 그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오직 복음전파 이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현실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고난이지만 바울처럼 영원한 처소와 주 예수를 사모하는 자는 죽음을 초월하여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장 복된 인생은 9절에 ampldquo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는 것 amprdquo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본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주님이 아닌 나를 기쁘게 하고자 살아간다면 절망의 탄식이 끊이지 않고 두려움 속에 살 수밖에 없어요. 10절에 보니 ampldquo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된다 amprdquo고 해요. 산 자나 죽은 자나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열외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대에서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잘못 해석하면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착각할 수 있지요. 하지만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9절 말씀과 연결해서 보면 심판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시기에 선악의 기준도 내가 아닌 주님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와 세상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의 기준대로 살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늘 힘써야 해요. 우리가 심판대 앞에서 증거할 것이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적용하세요.
◎ 믿음으로 담대히 행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나요? 보이는 것만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지는 않으세요? 마지막 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주님이 어떤 판결을 내리실 것 같습니까?
[ 묵상간증 ]
▷▷ 꿈꾸던 장막은 무너졌지만 아내와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사모하게 되었다는 한 성도님의 (( 큐티인 )) 묵상간증입니다. ( 내가 꿈꾸던 장막 )
[ 큐티인은 큐티 선교회에서 만드는 큐티 묵상지에요. 이르케 듣지만 마시고 꼭 종이로 된 큐티책을 구입해서 꼭 여러분들이 써 가시면서 큐티를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
아버지가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저희 3남매를 키우고자 억척스럽게 사셨어요. 이후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 빨리 어머니를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아내를 만나 결혼했는데 아내는 맞벌이로 바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 혼자 있는 것에 익숙했어요. 그러나 아내가 아침 일찍부터 집안일을 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니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어 했지요. 하루는 아내가 울면서 ampldquo 여보 나 어머니 땜에 너무 힘들어 amprdquo하고 말했어요. 그런데 저는 어머니라는 말에 분노가 올라와 살림을 도와주시는 어머니가 ampldquo 뭐가 문제냐! amprdquo며 소리를 질렀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희 부부는 어머니 일로 싸움이 잦아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이에요. 아내와 저는 지인의 소개로 한 교회 소그룹 모임에 나가게 되었어요. 아내는 지체들의 나눔을 듣더니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힘든 점을 털어놓았어요. 그런데 계속 나눔을 듣다보니 아내 말이라면 무턱대고 화만 내던 저도 아내의 고통이 차츰 이해되기 시작했답니다. 오늘 2절에 ampldquo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amprdquo고 해요. 이 말씀처럼 그동안 어머니를 우상삼고 살면서 아내의 어려움을 외면했던 저의 모습이 깨달아지니 절로 탄식이 나왔어요. 그리고 가정을 지켜준 아내에게 참 고마웠답니다. 요즘 저희 부부는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사모하며 시간이 될 때마다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있어요. 현재 희망퇴직으로 실직하여 불안한 상황이지만 여전한 방식으로 날마다 큐티하며 담대히 살아가길 기도해요.
▷ 저의 적용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아내와 함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삼식이 남편을 위해 수고하는 아내를 위해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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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결혼해서 살면서 탄식할 일이 너무 많지요. 거룩이 아니라 행복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 되면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탄식할 일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믿는 우리는 탄식할 일을 없애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해요. 그럴 때 말씀이 깨달아지면서 환경은 변한 것이 없어도 담대히 믿음으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의 것만 생각하며 탄식하지 마시고 영원한 하늘의 처소를 덧입어 오늘 하루도 담대히 믿음으로 행하시길 바랍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원리인데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보다 이 땅에 있는 장막이 더 좋아서 육이 무너질까 두려워하는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탄식할 것밖에 없는 우리 인생이지만 예수의 생명을 덧입게 되면 담대히 행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망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지 못해서 벗은 자들로 발견되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것임을 깨닫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각자 선악 간에 행한 것을 심판받게 될 터인데 그 역할을 잘 감당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에 있든지 떠나든지 항상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터인데 그르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면 이 모든 집안의 관계가 다 하늘로써 오는 처소를 덧입게 올 줄 믿습니다. 주여 역사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