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
◈ 매일큐티 12월 6일 화요일 ◈
◉ 그리스도의 향기 ( 고린도후서 1:23-2:17 )
▷ 사랑
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 용서
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모두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지나치게 말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6. 이러한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는 것이 마땅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사역
12.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노트 ▣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 큐티인 )) 말씀은 고린도후서 1장 23절에서 2장 17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 첫째, 기쁨을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1장 23절에서 바울은 ampldquo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함이라 amprdquo고 합니다. 바울은 왜 고린도에 다시 가지 않은 것이 그들을 아끼는 일이라고 했을까요? 24절에 보니 ampldquo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함이니 amprdquo라고 합니다. 고린도를 재방문하는 것이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일이 될까봐 그랬다는 거에요.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설립하고 1년 반이나 교인들을 가르쳤으니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보이지 않아요? 먼저 믿은 자나 많이 배운 자는 자꾸 믿음의 주관자가 되려고 합니다. 이런 저런 강요를 하기 쉽지요. 하지만 바울은 그러지 않았어요. 자신의 사명이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에요. 인간은 결코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믿음도 생기고 변화도 되고 성장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2장 1절에서 바울이 ampldquo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amprdquo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당장 고린도를 방문해서 교회 안에 여러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었어요. 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나설 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교인들의 상황을 고려해 절제했어요. 절제는 맹목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에요. 상대를 적극적으로 배려하는 것이지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자신보다 남을 아끼는 마음으로 오래 기다리는 것입니다. 매를 맞아도 조롱당해도 싸우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어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교인들이 자신의 권면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 대신 그는 사랑의 편지로 간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권면할 때는 먼저 그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고 때를 분별하여 지혜롭게 전해야 해요. 우리는 그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기쁨을 돕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 적용질문입니다.
◎ 내가 자꾸 믿음을 주관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원을 위해 오늘 내가 절제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누군가에게 권면할 때 사랑으로 때를 분별하여 지혜롭게 전하고 있습니까?
▶▶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려면
◉ 둘째, 사랑으로 징계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5절과 6절에 보니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회개한 후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을 징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에 중요한 논리 가운데 세례와 권징( 勸懲 : 착한 일은 권장하고 악한 일은 징계함 )과 성찬이 있지요. 그런데 요즘 교회에서 권징을 찾아보기가 참 어려워요. 제가 섬기는 우리들 교회에서는 자기 죄를 고백하고 말씀으로 해석해 나가는 것을 가장 귀하게 여기지요. 하지만 공동체에 속한 뒤에 직분을 받은 후에 교회의 거룩을 훼손하는 죄가 드러나면 사역자든 직분 자든 반드시 치리( 治理 : 심사하여 책벌하는 일 )를 합니다. 치리는 죄인이라고 낙인찍는 것이 아니에요.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한 징계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혹여 징계를 받더라도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나의 거룩이 회복된다면 그보다 더한 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치리 받은 사역자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요즘에서 우리 목회자 세미나 때 ampldquo 사역자 치리 콘서트 amprdquo까지 있어서 각자의 그 간증을 합니다. 물론 평신도들도 이제 그르케 간증을 하지만요. 그리고 7절에 ampldquo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amprdquo고 합니다. 교회는 치리한 사람을 끝까지 돌보고 그 사람이 회개하고 일어나기까지 함께 짐을 지고 사랑으로 도와야 해요. 존 스타트 목사님은 ampldquo 자비가 없는 징계는 너무 가혹하고 정의가 없는 자비는 너무 관대하다 정의와 사랑의 균형이 중요하다 amprdquo고 했어요. 8절에서 바울도 ampldquo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내라 amprdquo고 합니다. 세상은 벌로 죄를 다스리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려야 해요. 10절에도 ampldquo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amprdquo라고 합니다. 나를 공격하고 손해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바울이 용서가 어디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앞에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용서받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사탄에게 속지 않게 됩니다. 자기 죄에 애통해하며 나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때 사랑으로 징계도 하고 남을 용서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치리를 했어도 공동체가 사랑과 위로로 격려하고 일어설 때까지 돕게 되니 치리했다고 교회를 떠나거나 이러지는 않습니다.
▶ 적용해 보세요.
◎ 공동체에서 내 죄가 드러나 치리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공동체의 사랑과 수고로 회복된 경험이 있나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 받았음에도 내가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묵상간증 ]
▷▷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회사에서 본을 보이기는커녕 나만 사랑하느라 사람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회개한다는 한 청년의 (( 큐티인 )) 묵상간증이에요. ( 근심하게 하는 자 )
저는 외가 쪽 첫 손녀로 태어나 친척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어요. 부모님은 저를 공주라고 부르며 키우셨지요. 그러다보니 가정에서 질서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나만 생각하는 아이로 자랐어요. 이후 성인되어 한 회사에 취업했는데 그곳에서 감정 기복이 심한 사수와 팀장님을 만났어요. 처음에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다 받아냈지요. 하지만 저는 곧 팀장님의 빈정대는 말에 지지 않고 대답했어요. 결국 그것이 말싸움으로 번져 팀 분위기는 엉망이 되고 말았답니다. 이후 저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이 일을 나누었어요. 그랬더니 저보다 먼저 회사에서 관계 고난을 겪은 지체들이 자기 이야기를 나누며 제 이야기에 공감해 주었지요. 그리고 제가 먼저 팀장님에게 사과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었답니다. 얼마 전부터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한 동기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동기는 제가 자신의 작업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자 대놓고 저를 무시했어요. 저는 그에게 말을 조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래도 동기는 저에 대한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않았지요. 저는 그와 소통이 안 된다며 후배들을 통해 그와 소통했고 선배들도 저의 눈치를 봤답니다. 그런데 오늘 2장 5절 말씀을 묵상하다가 제가 바로 남들을 근심하게 하는 자임이 깨달아졌어요.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회사에서 본을 보이기는커녕 여전히 나만 사랑하느라 상사와 동기들을 근심하게 한 것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저 죽어지는 적용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길 기도해요.
▷ 저의 적용은, 감정 표현이 미숙한 나 자신을 인정하고 이 모습을 공동체에 나누겠습니다. 동기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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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을 보니 바울이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할 문이 열렸다고 해요.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드로아는 바울이 성령의 환상을 보고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도여행의 방향을 바꾼 곳이었죠. 그러니 바울이 다시 드로아를 방문했을 때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런데 13절에 ampldquo 디도를 만나지 못함으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다 amprdquo고 해요. 그런데도 오히려 바울은 14절에서 ampldquo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amprdquo고 해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냄새를 나타내는 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것 같은 때에도 주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ampldquo 우리는 이겼노라 amprdquo고 고백한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그 신실하심으로 인해 각처에서 수많은 이방인이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루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따라 각자 속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오늘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양육한 바울이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지 않으려고 절제하며 조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 가운데 먼저 믿었다고 강요하고 가르치려는 모습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고 오늘 이 바울의 섬김을 본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어야 징계를 할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데 저희에게 이 사랑이 없음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근심 가운데 있는 지체들에게 우리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도록 주여 섬길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계획이 막히더라도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