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 27-38절을 보며, 아이러니를 묵상한다.
아이러니다.
소경들이 예수님을 봤다.
눈뜬 사람, 멀쩡한 사람들이 예수를 못알아보는데,
그래서 엄연한 하나님의 아들을 무시하고 박해하고,
기껏해야 선생으로밖에 부르지 않는데,
눈먼 사람, 소경들이 예수를 알아봤다.
그분을 다윗의 아들이라 불렀다.
왕이란 말이다.
왕이신 하나님, 왕되신 에수님이란 뜻이다.

- 부여 이야기 , 사진 : 물맷돌 님 -
육적인 눈은 멀었지만 영적인 눈은 밝히 뜨여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알아봤고,
그분에게 달려가 나음을 입었다.
문제가 해결되는 은혜를 받았다.
아이러니다.
눈뜬 자를 어둡게 하시고,
눈먼 자를 밝게 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뿐만아니다.
벙어리들도 그랬다.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입을 열었다.
입이 멀쩡한 사람들,
세치 혀를 잘 놀리며 말잘하는 이들은 오히려 예수를 핍박했는데,
말못하는 사람, 입다문 사람이 오히려 은총을 입었다.
야고보서 말씀이 생각난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들을 택하사 믿음에 부요케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하셨다는 2장 5절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이러니다.
눈밝은 사람은 못보게 하시고,
눈어둔 사람이 보게 하시며,
말잘하는 사람에게선 찬양을 받지 아니하시고,
말못하는 사람이 입을 열어 찬송케하심이 아이러니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나 또한 믿음에 부요한 자로 살#44282;다.
세상에 대하여 부요한 자가 아니라 믿음에 대해 부요한 자로 살#44282;다.
그래서,
생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44282;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는 달라서,
세상의 법과 원리대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하나님의 법과 그 말씀의 원칙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대한이 지난 후라 날씨마저 한결 포근하다.
이제 봄이 정말 저만치 달려오고 있는 것같다.
그래서 마음마저 한결 사뿐한 목욜의 새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