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사함에서 침상들기까지...
작성자명 [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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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1.20
일 년 전 쯤 레볼루셔너리 로드(혁명의 거리) 라는 영화를 남편과 보고 롯데리아에서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눔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는 인생의 목적(세계 여행)에 대한 뜻이 맞는 두 남녀가 만나 마음을 합하여 뜻을 이루고자 결혼하지만 아이가 생김으로 계획은 미뤄지게 됩니다.
그래도 흥분된 마음으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라는 곳에 집을 구하고 두 번째 아이까지 낳고 평범한 가정이 됩니다.
동네에서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행복한 가정이지만 일에 지쳐가는 남편과 이루지 못한 꿈에 여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부인은 어느 날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대화를 하려면 0.5초안에 화부터 내는 남편에게 ‘이제부터라도 가자!’ 하면서 그렇게 설득이 되어졌지만 당장 회사에서 승진의 제의가 들어오고 부인에게는 세 번째 아이가 생겼음을 알게 됩니다.
방황하는 남편은 부정한 관계를 갖게 되고, 고민 중에 있던 부인도 부지중에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옆집남자와 부정행각을 치루고 침묵 속에 며칠을 지낸 후 결국 스스로 낙태를 자행함으로 자신도 죽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그 당시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의 심정이 지극히 내 심정이 되었던 것은 재혼 후 일 년 남짓 되었을 때 내게 찾아온 곤고함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지금의 남편 에드워드를 만난 것은 우리들교회를 오고 나서 몇 개월 되지 않을 당시 댄스강사였던 저는 불륜의 남자와 결혼 하려고 열심히 쫓다가 헤어진 후였습니다. 일대일 양육을 받던 때였습니다.
댄스 학원에 4명의 외국인이 왔는데 담당강사가 영어를 못하여서 조금 말을 섞을 줄 아는 제가 돕게 되었습니다. 겨우 한 달, 6번 정도 강습시간이 진행되었고 인도에 있는 국제학교로 가게 된 이 사람은 그냥 그렇게 떠났습니다.
한 달 후 이메일을 받게 되었는데 바로 인도에서 보내온 메일이었습니다.
짧은 영어실력에다 금방 다 해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 첫 번째의 편지를 읽으면서 글귀에서 나오는 느낌이 너무 좋았기에 “이런 사람과 일 년만 살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깐의 시간이었기에 이 사람의 얼굴도 인상도 생각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황당도 하였지만 그 편지의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당장은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냐~’ 하면서도 그야말로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지만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그것이 자신에겐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자신이 따르는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내안에 욕심이 있었기에 계속 메일과 전화로 큐티 나눔을 하며 하나님 안에서라는 명분을 쌓으며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전남편과의 가정회복의 마음이 제게 조금씩 살아났던 그 당시 전남편의 재혼소식에 충격을 겪으면서도 이 사람과의 세 번째 만남이 있었던 일 년 후 (목장에서 오픈하고 묻기는 하였지만 또 물으면 반대 할까봐 묻지 않고, 그 당시 재혼을 반대하시던 목사님의 애통하심을 뒤로한 채 라헬이 깔고 앉은 드라빔을 나의 적용으로 삼으며) 결혼을 결정하고 혼인신고를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내게 제시한 결혼조건은 이혼불가였습니다. 제가 이혼녀이기 때문에 또 쉽게 이혼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날의 말씀이 스가랴 13장이었습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을 열어 주신다는, 우상을 끊어주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게 재혼 후 2년 6개월이 된 올 겨울
처음 눈이 많이 내렸던 주일 저녁 하루 종일 예배에 대한 즐거움과 청소를 끝내고 나누는 청소팀의 나눔까지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캐나다 오타와 출신인 남편은 이층높이의 눈이 내리고 영하40도를 오가는 겨울날씨에 익숙한지라 14살이 되어가는 낡은 마티즈를 타고 크로스컨츄리 스키대회에 출전한 사람처럼 모두가 설설 기어가는 눈길 도로에서 다른 차 사이를 오가며 차선위반까지 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씽씽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운전 중이라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는 우리차가 좋은 차도 아니고 이러다가 사고 나겠다 싶은 마음으로 점점 졸아들고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남편의 자랑스런 얼굴에도 차마 수고했다는 말은 도저히 못하겠기에 그냥 ‘죽는 줄 알았다’고 하니 자신은 천천히 오면 더 피곤하다면서 캐나다에서는 다 그렇게 운전을 한다면서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괜찮아도 미숙한 한 사람과 부딪히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하니 조금 조용해졌지만 그때부터 조용한 침묵이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초급성 우울에 빠진 저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며 맥주도 한잔 하였습니다. 그 날만의 감정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남자랑 딱 일 년 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영화의 그 남자처럼 0.5초도 아닌 0.3초 안에 화가 나는 사람이었고 출신은 다르지만 여느 다른 한국남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그야말로 남편이었습니다.
별 인생도 없지만 별 남자도 없다는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래도 일 년이 되었을 때 정말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어떻게 하나 하면서 진짜 마음을 졸인 적도 있었습니다. 나의 욕심이었음을 내 자신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학교에 신종플루 2차 접종을 마치고 힘을 빼고 앉아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지금의 남편의 답답함이 전남편, 그리고 두 번째 남자와 다를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남편이 내 옆에 앉아있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다섯 남자도 다 네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우물가의 여인이 바로 저 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찾아 헤매이던 그 여인이었습니다.
그 밤에 결국 침묵을 깨고 자려던 것을 접고 침대에 앉아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전날 하던 말에 대해 ‘너는 그렇게 운전안하냐~’는 식으로 치사모드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짐승의 수준으로 열심히 꾀를 낸 것이 겨우 그것임을 저도 알기에 먼저 저의 깨달음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당신이 전 남자들과 똑같았다고....그러니 자신도 내가 자신의 전 여자와 같은 말을 했다는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그 안에 여전히 우리의 우상인 행복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새 책의 첫 이야기처럼 부부가 한 몸이 되려면 서로의 반쪽을 잘라내고 그야말로 접붙여서 하나가 되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 부분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불란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행한 부모의 삶과 자신들의 지난 삶에서 나온 당연한 방어자세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전남편과의 결혼생활7년 동안 한 번도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바가지 긁는 여자는 미련하다고 생각했기에 매번 남편이 늦게 들와도 술이 취해서 들어와도 다 그럴 수 있다고 여기며 오히려 발 씻겨주고, 꿀물타주고, 해장국까지 대령해서 출근시키고 나서 내 출근을 하는 비정상의 마누라였습니다.
그리고 7년 후 일이 심각해졌을 때 우리는 아무런 대화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대화가 되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양은 다르지만 그런 삶을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나에게 잘못하는 부분을 말하면 내가 화를 낼까봐 말을 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잘못된 부분을 열심히 배워가고 있었습니다. 제 삶의 결론이지요.) 왜냐하면 부모의 싸움을 보아왔고, 전 결혼 생활에서 화해도 결론도 없는 싸움을 했고 그 생활에서 행복을 얻을 수 없었기에 행복한 것 같은 지금을 깨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지금의 상태가 깨질까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잘못이 있음을 말할 수 없었기에 속에서는 답답함이 분노로 변하여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기에 작은 일에도 0.3초 내로 화를 내기 일쑤였습니다.
여전히 행복이 목적인 발언임을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반쪽을 내어주고 반쪽을 접붙여야하는 아픈 과정을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여전히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깊이 숨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양육에, 훈련에, 주안에서 바쁘게만 지내오느라 제대로 싸울 기회가 없었을까요? 말씀 안에 들어와서 죄가 많다보니 각자가 주님 앞에 가느라 서로 바빠서 그랬다고 변명도 해 봅니다. 목자회의에 가면 간사님이 첫 대면에 가장 많이 물으시는 질문이 “부부싸움 안 해요?” 묻곤 하셨습니다. 그때의 대답은 이해 안 되는 일이거나 싸울만한 일이 생기면 그날의 큐티 책을 탁! 펴고 다시 큐티를 하며 서로가 내 잘못을 보게 되니 싸움이 안 되더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같은 말씀을 들으며 큐티나눔을 하고 서로의 대화가 통하며 서로 죄를 고백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거룩의 과정에서 따라오는 주님이 주시는 찐한 결혼의 행복함도 맛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서야 왜 그 질문을 받았어야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야말로 말씀 안에서도 이렇게도 교양을 떨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반쪽을 주고받으라는 말씀이 두 사람을 설득시켰고 앞으로는 열심히 서로의 잘못된 부분을 주고받으며, 또 열심히 싸워가며 행복이 아닌 거룩을 이루자고 종결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주님에게는 이 사건이 여기서 끝이 아니었음을 오늘(19일)말씀을 묵상하며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주님께 데리고 옵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에 참람하게 여기는 서기관 그 안에 제가 있음을 보게 하시는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재혼을 바랬던 또 하나의 이유는 친정엄마의 이혼 후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혼돈스럽고 복잡하고 어떻게 누구도 도울 수도 손을 댈 수도 없는 불쌍하기 그지없는 상황으로 사시는 것을 보고, 또 이혼 후에 제가 느꼈던 말할 수 없는 수치감과 무기력에서 오는 생활의 무질서함을 극복해 보려는 심산으로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치감은 주님과의 재회를 통해 해결해 주셨지만 우울로부터 시작되었던 무기력에서 오는 생활의 무질서함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나아지겠지 라는 얄팍한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재혼 후 환경은 달라졌지만 제 생활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집안은 어지러워지고 빨래는 쌓여갔지만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회피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목장예배를 위해 하는 청소가 거의 전부 였습니다. 혼자서는 못했고 그 모든 일을 남편이 아내가 되어 감당하고 있는 것 외에는 제 자신 자체에 나타난 생활의 변화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집에 들어오면 무기력해지고 무기력의 블랙홀로 들어가는 느낌을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그 이유는 죄 사함을 주시는 주님을 참람하게 여기고 있는 저의 참람함 때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돌아보니 우리들교회 온지 5년차가 되어갑니다. 주님도 다시 만나 죄 사함의 감격도 누렸고 구원의 감격도 누리면서 죄보기의 감사도 그야말로 쏠~쏠~(제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표현입니다.)한데 나의 죄를 사함 받은 것과 침상을 들기까지는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제게는 주님을 참람히 여기는 과정이었습니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목장을 섬기면서 도저히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말씀이 안 들린다고 생각되는 지체들을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갈듯 말듯 알듯 말듯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가다가도 한 번씩 다 뒤집어버리는 상황을 연출해 보여줄 때면 제가 오히려 깊은 절망감이 들고는 했습니다.
내 답답함을 주님의 답답하심 일거라고 대변하며 말씀이 안 들려서 그래~, 어쩌면 그렇게 양육을 받아도 모르냐~ 2,3년을 들어도 안 들리냐~ 이번 주에 말씀하셨잖냐고~ 하면서 얼마나 정죄를 하며 왔는지 모릅니다. 아예 대놓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왜 기억을 못하냐고 한 적도 많습니다. 다만 감정으로만은 아니었습니다. 주안에서 누리는 평안과 기쁨이 어떠함을 알기에 그것을 함께 누리고 싶은 소망과 애통함도 함께 있었습니다.
오늘(19일)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 주님께 구했습니다. 왜 나의 눈이 그것을 보는 것인지, 달라 보이지만 결국 여럿에게서 똑같은 것을 보는 나를 알게 되었기에 나의 모습을 보게 해주시라고 구했습니다.
말씀에 들어 온 지 횟수로 5년이 되어가고 예목까지 공식적인 모든 양육은 쏟아 부어주시는 은혜 가운데 다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화 없는 나의 생활이, 나의 인생의 목적이 드러나면서 여전히 말씀을 들어도 변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이제야 보게 하십니다.
남편과의 대화 후 나의 본 모습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형편과 내 자신에 대한 판단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말씀처럼 스스로 잡혀있기로 한 칭찬과 우려를 함께받았던 나의 열심을 잡아놓고 보니 나의 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가장 우선 시 되어야 할 나의 역할과 본분, 경제적으로도 나의 형편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우리 부부에게 맞는 씀씀이를 생각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남편과 우리가 어떤 규모로 살아야 하는지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게나마 적용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남편’이라는 사람에게 토를 달지 않고 잘난 척, 아는 척 하지 않고 “예”로 대답을 하고 따라 보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시간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더 크신 주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저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음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5년이나 말씀을 들었어도 내가 들고 일어서야할 침상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이제야 그 침상을 들어야 함을 겨우 알게 되었는데 제가 더디다 판단했던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신 주님을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 겨우 나의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30년 살았는데 변하려면 30년 걸린다고 하신 말씀이 제 말씀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남의 티를 보면서 내 들보를 숨기고 있었는지, 결국 남의 티는 나의 들보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각자에게 향하신 말씀을 삶으로 이루어주시는 주님의 시간과 계획이 있으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주님의 그 시간을 참람하다 여겼던 저의 참람함의 교만한 악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열심이 아닌 저의 열심으로 닦달함과 판단의 악함 앞에서 말없이 당해주시기만 하셨던 목장식구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내 자신이 삶으로 살기 전에는 진실로 깨달을 수 없는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서기관의 생각을 아셨듯이 제 마음의 악한 생각을 아시기에 내 죄를 알게 하시고 죄 사함이 먼저 인 것을 가르쳐 주심이 얼마다 다행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 쉬운 것을 먼저 주시는 주님이심을...
첫 남편과의 7년 연애를 하고 7년을 살고, 두 번째 남자와 7년을 결혼하려고 온갖 애를 다 쓰며 행복을 찾아 야곱처럼 헤매이다가 저는 모든 것을 잃고 주님을 만난 후 지금의 남편과 만나 3년 반이 되었습니다.
제게는 세 번의 결혼인 샘입니다.
이렇게 남자들을 바꿔보고 또 말씀을 들으며 열심히 뛰어 다녔어도 그 어디에도 내가 생각했던 행복은 없었습니다. 열매도 없었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내 삶을 바꿔 줄 혁명의 거리는 없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보다 크신 주님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니 오히려 주님이 더욱 든든하게 다가오십니다.
주님만이 내 삶의 중독 된 죄에서 자유케 하실 분이라는 것 그래서 중풍병을 낳게 하시고 내 삶을 바꿔줄 힘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남편이자 혁명가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곳 우리들 공동체가 바로 우리가 꿈꾸던 그 삶이 있는 그 혁명의 거리가 아니겠는지요.
내 생각 내 목적의 우물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던 중풍병자인 저를 이렇게 귀한 말씀의 은혜로 인도해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귀한 예배 귀한 말씀으로 나 같은 죄인을 말씀으로 아직도 진통가운데 낳아주시는 사랑하는 목사님 정말 면목이 없지만 감사합니다. 쑥~ 나와서 진통을 빨리 끝내드리고 싶은데... 제 모양이 맘 같지가 않습니다.
무엇보다 혼자서는 아무 움직임도 할 수 없는 중풍병과 내죄를 모르는 문둥병자인 저를 예뻐해 주시며 같이 걸어가 주시는 우리들 공동체 그리고 특별히 이런 나를 주님께 때마다 데려다 주시고 피흘려주시는 목장 식구들, 목장 식구들의 믿음으로 내 죄를 사해주심을 믿습니다. 많이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많이많이 사랑합니다.
나의 우상을 쫓아가는 와중에 들려주신 말씀일지라도 죄를 사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나의 침상을 들고 복귀하여 가정 안에서의 잃었던 역할에 잘 순종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제가 누웠던 침상을 바라보며 병든 자의 죄를 사해주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의 은혜를 따라 저 처럼 침상에 누워계신 분들을 잘 인내하며 주님의 때까지 사랑으로 섬기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