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고 비방하고 멸시까지 하였습니다.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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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0.01.11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세 번씩이나 이르시는 주님의 물음에
자신의 속내를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베드로의 가로되 란 고백 속엔
주님을 부인한 후회와 회개의 맘이 가득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맘의 중심을 보시며 또한 아시오니
진실로 심령이 가난한 자를 아시며
애통해 하는 자를 아시며
온유한 자를 아시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아시며
긍휼히 여기는 자를 아시며
마음이 청결한 자를 아시며
화평케 하는 자를 아시며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를 아시며
진실로 주님으로 인하여 욕을 먹고 핍박 받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듣는 이를 아신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항상 이러한 삶을 온전히 살지는 못하지만
가끔씩이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합당히 행할 때면
맘속에 얼마나 기쁨이 충만해지는지요.
그러므로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수만있다면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겠지요.
허나 육신의 연약을 핑계로
순간순간 악하고 음란한 세상과 연합할 때면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한동안 심히 번민함을 경험합니다.
저 자신이 선하고 의롭지 못하였기에
교회에서의 지도자분들에게
항상 의롭기를 요구했고 선함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 분들에게도
더러는 불의하고 더러는 악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얼마나 실망하였는지..
그 분들 중에는 자신의 불의와 악함을
육신의 연약함으로 드러내어 말씀하시는 분들,
자신은 용서받은 죄인이라 고백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율법의 요구를 종용하며
자신은 의롭다 하는 이들 중에서 불의를 발견할 때면
더 추악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들도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가운데 있음을 알지 못하는
그러므로 장성하지 않은 믿음의 수준일 뿐인데
저는 그들을 욕하고 비방하고 멸시까지 하였습니다.
저 자신이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알지(야다) 못하였기에
사람을 향한 바램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캐나다의 소도시 윌리엄스 레이크에 와서
한 가지 좋은 점은
이곳이 한국의 대도시에서 흔히 보는
악하고 음란한 환경에 덜 오픈 되었다는 것입니다.
밤늦게 술 마시고 돌아다는 이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아이들이 브랜드에 덜 민감하며
청소년들에게 술 문화(?)를 접할 기회가 겹겹이 차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저 또한 눈으로 범죄 할 기회를 접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며
무엇보다 하루 열 시간의 중노동을 하다 보니
혼자서 여가라는 시간을 갖기가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또한 도시 전체가 오후 여덟 시가 되면
길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곳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TV도 끊고
아이들에게 순수하게 우리들 교회의 공동체의 삶을 들려주며
그리고 목사님의 말씀에 백 프로 아멘 하도록 양육하니
아이들이 다른 이견을 내세울만한 잘못된 가르침을 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또래아이들이 추구하는 잘못된 이념이나
철저히 이기적인 목적을 삶의 목표로 세우고 있지 않음으로 하여
영으로 육으로 순박함을 영육으로 가득 체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관계로
캐나다인 교회에서도 겉으로 드러난 친절함과 나눔의 삶들만 보는 것도
한편으론 위로가 됩니다.
그래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함께 어려움을 경험하는 가운데 양육이 되어져야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하심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오늘 캐나다인 교회에서 헌금 찬양을 하였습니다.
유일한 한국인 가정이 예배드림도 신기한데
헌금찬양까지 하였으니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표정관리 행동거지도 더 잘 해야겠습니다.
찬양팀 반주자가 다음번엔 “하나님의 은혜”를 하자고 합니다.
영어로 번역된 가사의 내용이 너무나 은혜롭다며.
그래서 4주 후 또 다시...
아내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도 시도해 보랍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얘기하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들려줌이 어떠하냐며...
혹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영어 가사 번역본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