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
◈ 매일큐티 9월 14일 수요일 ◈
◉ 참사도와 자유인 ( 고린도전서 9:1-18 )
▷ 바울의 권리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 바울의 인내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 바울의 상
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 김양재 목사님 매일큐티노트 ▣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김양재 목사입니다. 오늘 (( 큐티인 )) 말씀은 고린도전서 9장 1절에서 18절까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참사도와 자유인으로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옵소서. 듣겠습니다.
▶▶ 참사도와 자유인으로 살려면
◉ 첫째.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제 본문 마지막 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도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면 절제하겠다는 적용을 했어요. 그런데 오늘 1절에서는ampldquo 그렇다고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amprdquo고 강하게 이야기 합니다. 자신이 포기하는 것이 있어도 여전히 자유자요 사도라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는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며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 달리 예수님이 살아계실 동안에 사도로써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대적자들의 비난과 의심을 받았지요.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이 사실에 근거해 자신의 사도권을 담대히 주장했습니다. 또 2절에서는ampldquo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amprdquo 고 합니다. 적어도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바로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그들이 만약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바울을 통해 예수를 믿게 된 그들의 정체성 또한 부정하게 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3절에서부터 바울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모함당하고 감옥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도 인내한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이르케 적극적으로 변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르지 않았다가는 자칫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마저 떨어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이처럼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내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만큼은 확신 있게 변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각자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이런 정체성이 있어야 복음 때문에 인내할 수 있고 복음 때문에 소리를 내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 적용질문 드릴게요.
◎ 여러분이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세요? 나를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어트게 복음을 변호하겠습니까?
▶▶ 참사도와 자유인으로 살려면
◉ 둘째. 권리를 쓰지 않고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4절부터 11절까지의 내용은 한마디로 바울이 다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부양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 권리는 그저 당시에 통용되던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라 율법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고 바울이 아주 논리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12절을 보니 ampldquo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amprdquo라고 해요. 바울은 교회에 부양을 받지 않고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생계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지요. 하지만 당시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이런 권리를 쓰지 않고 사례를 받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사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책잡아 공격했어요. 아볼로나 다른 사역자들이 사례를 받았다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직접 세운 사람인데 더욱 그런 고난이 있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왜 권리를 쓰지 않았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자신의 생계를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까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당시에 떠돌이 철학자들이 돈을 받고 연설하던 관례가 있다 보니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그런 것과 비교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교회에 부양을 받고 사례를 받는 것이 틀렸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13절과 14절에서 구약의 율법에서 뿐만 아니라 주님도 주의 일을 하는 자들에 대한 분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고 바울이 강조한 것입니다.
▶ 적용해 보세요.
◎ 내가 충분히 쓸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포기해 본 적이 있나요? 내가 인내하며 참는 적용을 하며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 묵상간증 ]
▷▷ 범사에 참지 못하고 가족에게 혈기를 부려 그리스도의 복음의 장애를 불러일으킨 것을 회개한다는 한 집사님의 (( 큐티인 )) 묵상간증이에요. ( 복음에 장애가 되는 나 )
작년 겨울에 남편과 저는 시골에 있는 친정에 가서 김장을 도왔어요. 그런데 김장을 다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남편이 친정 오빠들 흉을 보기 시작했어요. 오빠들이 김장을 도우러 오지도 않고 부모님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저도 처음엔 ampldquo 그러게, 오빠들이 와서 도와줬으면 더 빨리 끝났을 텐데 당신 오늘 정말 애썼어요amprdquo라고 맞장구를 쳐주었답니다. 하지만 남편은 친정 부모님 앞에서도 오빠들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계속 쏟아냈어요. 그러자 저는 혈기를 참지 못하고ampldquo 제발 그만 좀 해요! 이럴 거면 다신 여기 오지 말아요! amprdquo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분이 풀리지 않아 오빠들에게 전화를 걸어 분노를 쏟아냈답니다. 심지어 ampldquo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우리가 한 식구 맞아? 이럴 거면 교회는 왜 다녀요? amprdquo하면서 오빠들의 신앙까지 비난하는 말을 내뱉었어요. 그러고 나니 저 자신에게 실망이 될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남편에게도 본을 보이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내내 좋지 않았답니다. 오늘 12절에 ampldquo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않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함이로다 amprdquo 라고 해요. 이 말씀을 묵상하는데 범사에 참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혈기를 부리는 바람에 그리스도의 장애를 불러일으킨 저의 죄가 깨달아졌어요. 이후 저는 남편과 오빠들에게 용서를 구했답니다. 그러자 한 오빠가 ampldquo 괜찮니? 목소리에 기운이 없구나 amprdquo 하며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었어요. 이제는 부모님을 섬기는 일에 제 공로를 주장하지 않음으로 주께 영원한 상을 받기를 기도해요.
▷ 저의 적용은 가족 간에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내 권리를 쓰지 않고 혈기내지 않겠습니다. 오빠들에게 선물과 편지를 보내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겠습니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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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 사도로써의 권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소한 물질 때문에 복음의 장애가 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세심한 배려에서 비롯된 목회 철학이었던 것이지요. 물론 복음을 전하며 사례를 받던 기존의 사도들을 비판하며 자신을 앞세우고자 한 것도 아닙니다. 어제 본문에 이어 자신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절제한 것은 오직 교회 공동체에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16절에서 바울은 ampldquo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amprdquo 라고 해요. 복음을 전하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사명이자 존재의 이유이기에 내가 돋보이려고 이것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러면 바울이 생각하는 상은 무엇일까요? 18절에 보니ampldquo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amprdquo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참사도와 자유인의 권리를 다 쓰지 않음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신 상이라는 것이지요. 이르케 나의 정체성이 확실할 때.. 복음이 최고의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참사도와 자유인으로 세워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복음이 최고의 상급되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지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복음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싫고 참고 인내하는 것이 힘들어서 늘 속에서 소동이 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넘긴 바울이 스스로를 참사도요 자유인으로 여기며 사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참으로 복음 때문에 한 가지도 제대로 내려놓지 못하고 범사에 참지 못하는 저희들과 너무나 비교가 됩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통해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 주님이 사도로 우리를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내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 최고의 상급이라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이 저희의 고백이 다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특별히 가족 간에 불화로 힘들어하는 지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범사에 참고 인내함으로 각 가정에 구원이 임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성령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