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장 1-12절을 보며, 독사의 자식들이라 써놓고를 묵상한다.
~라 써놓고 ~라 읽는다는 놀이가 생각난다.
그 놀이대로라면,
독사의 자식들이라 써놓고, 열매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읽는다.
독사의 자식들이라 써놓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읽는다.

오늘 본문에서 세례요한은 그렇게 말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그렇게 나무랐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들,
그들을 향해 그렇게 파충류의 자식들이라고 엄히 꾸짖었다.
그래서 우린 또 이렇게 읽는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라 써놓고,
경건의 모양뿐인 사람들, 능력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라 읽는다.
오늘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통해 말씀하신다.
회개하라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불신자들을 향한 외침이 아니다.
불신자들은 아예 괄호밖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네들이야 죄를 짓든말든 아예 카운팅조차 않으신다.
원래가 어둠에 속한 자들이기에 관심조차 없으시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도 있듯이,
예수가 이 땅에 오심은 자기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자기백성이 아닌 자들을 위하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님을 구주라고 시인하는 사람,
그런 우리들을 향해 회개하라신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신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 역시 파충류의 자식에 다름아님을 엄히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또 두손을 모운다.
마음으로 악한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말로 더러운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행동으로 추한 짓거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하면,
나 역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파충류의 자식에 다름아님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아버지를 부른다.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케해달라고,
오늘도, 이 하루도,
뿐아니라 이 한 해도 그 영의 힘으로 살게 해달라고
그래서 거기에 마땅한 열매맺게 해달라고
간절히 아버지를 불러보는 화욜의 맑은 겨울아침이다..